표정 관리가 안 된다. 원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태어날 때부터 잘났든 노력해서 잘나게 되었든 상관없이, 아무리 잘난 사람이어도 자기 입으로 나 잘났다 말하는 걸 못 봐주는 법. 재수 없으니까.
저 봐봐. 내가 아무리 이렇게 완벽한 이상형을 눈앞에 두어 넋을 조금 놨기로서니 저렇게 사람을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게 어딨냐고. 나 잘생겼어요? 몰라서 묻나? 하지만 알아도 대놓고 묻진 말아야지. 무슨 자신감이야.
"표정 무서워진 것 봐."
할 말을 잃기도 했고, 자기 잘났음에 심취한 사람에게 거부감이 있어 얼굴을 잔뜩 구겼더니 남자가 웃으면서 말한다. 아주 활짝 웃어 광대뼈가 동그랗게 솟아올라 귀엽다. 같이 웃을 뻔한 걸 겨우 참고 대꾸했다.
"자아도취가 심하시네요."
"사람 얼굴을 뚫어져라 침 흘리면서 쳐다본 사람이 누군데요."
"제가 언제 침 흘리면서 쳐다봤다고 그래요?"
"그럼 그 침 자국은 너무 잘 자서 생긴 건가 봐요? 그것도 좋네요."
아차.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방금까지 맛있게 잘 잤다며 감탄하고 일어났다는 걸 깜빡했다. 머리는 까치집처럼 산발이고, 잠에서 깨 세수도 안 한 채로 지금 이 남자 앞에 서 있는 나를 왜 이제야 알았을까! 서둘러 두 손을 들어 머리를 헤집었다. 부끄러워서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고도 싶었고, 눈곱도 떼고 붕붕 뜬 머리카락도 눌러앉히고, 또... 아니다. 그냥 도망가고 싶다. 당장 죽고 싶다.
"화장실은 저기. 세탁기 뒤에."
어떻게 또 알았는지 남자가 내 뒤를 가리켰다. 더 얼굴이 뜨거워진다. 이젠 숨을 쉴 때마다 부끄러움이 커져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 얼굴을 가리려 끌어 덮은 머리카락 사이로 남자가 실실 웃는 게 보인다.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무리 찾아도 문에 손잡이가 없어서 문 표면만 더듬었다. 울고 싶었다. 문 하나를 제대로 못 열어서 답답했고, 화장실 문을 이딴 식으로 만든 안 프로에게 화가 났다.
망할 안 프로. 이 집 사람들은 죄다 사람을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들어. 망할.
드르륵-
내내 당겨 열려고만 했던 화장실 문이 옆으로 밀려 열렸다. 밝은 회색 톤의 타일로 사방이 꾸며진 화장실이 펼쳐진다. 평범한 변기와 평범한 세면대. 수건걸이에 걸린 새하얀 수건. 그리고 가장 안쪽에 벽면과 같은 색의 타일로 쌓아올린 욕조가 있다. 화장실 불을 켜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밝아, 어디서 빛이 들어오나 보니 천장과 벽이 만나는 구석에 손가락 높이만 한 창이 길게 나있다.
그 빛이 내 등 뒤에 선 남자의 인기척을 느끼도록 그림자를 냈다.
"미안해요."
남자가 문을 대신 열어준 손을 거두며 말했다. 뒤를 돌았다. 남자의 손은 도로 자신의 바지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크게 숨을 내쉬어 부풀었던 정장 조끼가 제자리를 찾았다. 엉망인 모습이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침 자국 같은 거 없어요. 머리도 괜찮고.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요."
"......"
"조금 놀린다는 게 지나쳤네요. 사과할게요."
남자가 주머니에서 다시 손을 꺼낸다. 두 손을 자기 목 아래 가슴에 포개어 대고 다시.
"미안해요."
울 것 같았다. 나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보는데, 진심으로 내게 사과하는 것처럼 보였다. 입을 떼지 않는 나를 기다리며 자신의 사과를 내가 받아주길 바라는, 죄를 지은 어린아이가 부모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설령 내가 지금 남자의 외모에 속아 진짜 의도가 어떤지 바라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잘생겼어요. 좀 재수없지만. 됐어요?"
침착하게 내 말을 기다리던 남자는 내가 끝까지 자존심을 못 버린 채 투덜대며 한 말에 참았던 웃음을 툭 뱉었다. 안심한 남자의 표정에 내가 안심이 됐다.
"내가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남자가 천천히 손을 든다. 내 뺨을 쥔다.
"희례씨에게 내가 잘생겨 보인다는 거예요."
내 뺨을 쥔 남자의 손가락이, 엄지가 다정하게 내 눈을 쓰다듬듯 매만진다. 눈 안쪽에서 딱딱한 눈곱이 남자의 손가락에 의해 떨어져 나가는 게 느껴진다. 더러우면서 개운했고, 기분이 좋으면서 불쾌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자가 손가락에 묻은 내 눈곱을 튕겨 버리는 것보다도, 돌아서 현관문을 향해 걸어 멀어지는 것보다도, 나는 오직 이것을 묻고 싶었다.
"나도 그쪽 이름 알려줘요."
"......"
"싫으면 말고."
나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내 이름을 알고 부르는 게 왜 이렇게 자존심이 상하는지.
남자가 돌아선다. 싫다고 할까 봐 겁났다. 아니었고, 다행이었다. 다행이라니, 이상하다.
"전부."
"전부?"
"네. 전부. 내 이름이에요."
"그럼... 안전부? 이름이 안전부예요?"
내 질문에 남자가 이제껏 본 중 가장 크고 호탕하게 웃었다.
"난 안 프로랑 가족 관계 아니에요."
"아..."
"성이 전, 이름이 부. 특이하죠?"
"그럼 무슨 관계예요? 안 프로랑."
"사장님이지, 난 알바."
"그게 다예요?"
나는 왜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물어볼까. 그리고 저 남자, 전부는 왜 저렇게까지 내 질문에 정성껏 대답해줄까. 전부가 꽤나 곰곰이 생각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답했다.
"내 목숨."
"......"
"난 안 프로 없이 못 살거든요."
허공을 보는지, 그 저편의 기억을 보는지 초점을 잃은 전부의 눈을 보면서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족 관계가 아니면 연인 사이인 건지, 둘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건지, 안 프로는 대체 어떤 사람인 건지. 정말 많은 것이 궁금했지만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았다. 적어도 '내 목숨'이란 한 마디로 거의 모든 것을 납득할 수 있었다.
이해는 못해도.
"아무튼 얼른 씻고 컨테이너로 와요. 조식 먹어야죠."
전부가 나갔다.
펜션이 다시 조용해졌다. 공기의 흐름조차 들릴 정도의 침묵. 모든 것이 숨을 죽인 밀실로 돌아왔다. 점차 내 숨소리가 들리고, 혈류를 따라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이 들린다.
"목숨..."
목숨이라.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것이, 피가 흐르고 몸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것이 목숨인가. 누군가의 목숨을 특별하게 만드는 또 다른 목숨은 또 어떤 것일까.
전부의 눈빛이 생생하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선 나의 것과 너무도 비교된다. 살아있는 눈빛.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반짝이는 눈빛은 거울 속의 내 것과는 전혀 다르다.
내 것은 어둡다. 탁하고, 미약하다. 전부가 떼어줬으면서도 어느새 다시 차오른 눈곱보다도 죽어있다.
세수를 아무리 꼼꼼히 해도 눈곱이 하루종일 떨어지지 않는 날이 있다. 얼굴에 닿는 물의 찬기가 나를 깨우기는커녕 더욱 굳게 위축시켜, 눈곱조차 제대로 떨어뜨리지 못할 정도로 나약한 나를 확인시키는 그런 날. 손등으로 눈을 벅벅 부벼도 없어지지 않는, 거칠게 부빈 자리에 자극이 남아 오래도록 쓰리고 아린 그런 날의 눈곱 한 덩이.
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고, 손등에 붙은 눈곱을 닦아낸다. 손등에서 수건으로 옮겨 또한 달라붙은 눈곱. 그 존재감이, 생존 욕구가 나의 것보다 낫다.
그 와중에 난 배가 고프다. 굶주림은 살아있음의 핸디캡이자 페널티다. 그래도 어떡하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지. 적어도 아직은 살아있으니까.
잠결에 산발이던 머리카락이 세숫물에 차분이 정리됐다. 괜히 입가가 간질거려 한 번 더 물로 닦아본다. 침 묻은 자국이 있지도 않은데 영영 닦이지 않는 것만 같다. 됐다. 보이는 모습이 이딴 시골 동네에서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나. 그냥 나가자.
그렇게 펜션을 나서고, 현관문의 도어락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컨테이너로 곧장 향했을 때였다. 컨테이너 앞에 옹기종기 모여 통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분들이 전부 나를 바라보는 바람에 대충 한 세수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 자신의 초췌함을 다시금 원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