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주차장에 홀로 선 하얀 진돗개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저 나를 향해 시선을 던지는 중인 검은 눈동자를 맞받아치면서 저 진돗개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동물을 직접 키워본 적은 없었어도 동물을 보는 건 좋아해 동물이 나오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섭렵한 간접경험전문가로서 내가 내린 결론은, '절대 먼저 움직이지 마'였다. 보통 저런 육식동물들은 아무리 가축화된 개라도 사냥본능이 남아있기 때문에 눈이 안 좋아도 움직이는 물체에 대한 반응속도가 빠르다. 아무리 아침에 코 앞에서 봤을 때 아무런 공격도 받지 않았다고 해도 동물은 동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자극을 받아 급변할지 모른다.
저 아이를 자극하지 마. 나를 빤히 쳐다보는 저 똥그란 눈동자와 오밀조밀하게 모인 주둥이가 귀여워도 절대 먼저 움직이지 마. 얼굴에 비해 큰 뾰족하고 쫑긋 선 삼각형의 핑크색 귀가 귀엽다. 깜장색 단추 세 알이 콕콕 박힌 하얀 덩어리를 두 손 가득 잡아 잔뜩 조물거리고 쓰다듬고 싶... 아니야, 집중해. 거리는 3미터쯤? 네 발 달린 동물이 마음만 먹으면 날아와 날 덮칠 수 있는 거리라서 도망갈 수 없어. 그러니 최대한 있는 듯 없는 듯... 내게 흥미를 잃을 때까지 가만히...
휙-
정말로 내게 흥미를 잃었는지 곰탱이가 고개를 내려 바닥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설마 내가 모르는, 사냥감을 방심하게 만들어 순식간에 덮치려는 전략인가 싶어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곰탱이는 주위를 둘러다니며 냄새를 맡는 것 외엔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슥슥- 팔을 휘저어도 보고,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가보며 곰탱이의 환심을 끌려고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아마도 여기 서있는 웬 여자가 누군지 보다가 아는 사람이 아니란 걸 확인해 관심이 떨어진 모양이다. 가슴이 꽤 아프다. 서운한데?
곰탱이는 자갈들 사이사이에 핑크색 코를 박으며 정성스럽게도 냄새를 맡는다. 주차장터를 빙 둘러 안쪽까지 꼼꼼히 맡다가, 더 맡을 냄새를 찾아 이번엔 이쪽 컨테이너 주변을 어슬렁. 피크닉 테이블 주위를 서성이다가 통나무들 사이사이를 또 어슬렁. 특히 아침에 할머니들께서 앉아계셨던 통나무의 단면을 꽤나 집중적으로 살피는데, 그러다 나와 버스 할머니가 엉덩이를 나눴던 통나무까지 왔다. 바로 내 앞에.
킁킁- 곰탱이가 짧게 두 번씩 단면의 이곳저곳 냄새를 맡다가 어느 곳에서는 크으으응-하며 깊이 냄새를 마신다. 또 짧게 킁킁-하다가 또 어느 자리에서 크으으응- 다른 자리보다도 이 자리 냄새를 이렇게까지 자세히 맡아야 하나 싶다. 설마 내 엉덩이에서 곤란한 냄새가 나는 건가 싶어 찝찝한 기분까지 든다. 그만하라고 하고 싶은데, 말로 해서 되는 동물이 아니니 참 유감. 괜히 내 엉덩이를 한 번 툭툭 털어보기만 한다.
여차하면 통나무 위에 개 코자국이 찍히겠다. 거의 5분가량을 그렇게 냄새만 맡던 곰탱이가 드디어 움직여 다음으로 얼굴을 들이민 곳은 다름 아닌 내 발치였다. 통나무 냄새를 맡을 때는 통나무가 부서지나 자기 콧대가 부서지나 시합하듯이 박아대더니 내 발치 냄새를 맡을 때는 세상 조심스럽다. 마치 냄새를 훔치듯이 가까이 가도 되나 안 되나 눈치를 보면서. 드디어 나한테 관심을 주나?
슥-
오른쪽 발끝을 세워 곰탱이에게 아주 천천히 내민다. 곰탱이는 흰자가 다 보이게 나를 슬쩍슬쩍 올려다보면서 내밀어준 발끝의 호의는 또 좋은지 꼬리가 아주 천천히 살랑인다. 신발코에서 신발바닥으로 향한 곰탱이 코가 다시 올라와 발목에서 종아리로 올라올 때까지 꼬리가 계속 살랑이니, 어정쩡한 자세를 유지하느라 쥐가 나려는 것을 기분 좋게 참았다.
곰탱이가 눈만 들어 날 올려다본다. 탐색을 다 마쳤나. 애매하게 흔들던 꼬리가 이젠 하늘로 바짝 치켜세워지며 흔들린다. 꼬리가 흔들리는 것을 따라 엉덩이도 덩달아 좌우로 춤을 춘다. 당장에 주저앉아 곰탱이를 안아주고 싶은 걸 참느라 혼났다.
지금에서야 찬찬히 살펴보는 게, 곰탱이는 노견인 것 같다. 정확히 몇 살인지는 몰라도 꽤나 나이를 먹었다는 게 잘 알지도 못하는 나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때깔 좋게 털이 풍성하고 촘촘했지만 유독 눈가에 털이 빠져있다. 그렇게 드러난 눈가에 주름이 진 모습이 아침에 본 할머니들의 주름과 비슷하다. 그리고 가까이서 보니 검게만 보였던 눈동자가 자세히 보면 안광이 회색으로 흐릿한 것이다.
열 살쯤 되나. 몇 살부터 노견일까. 개의 수명이 몇 살까지였더라. 모르긴 몰라도 아침에 들었던, 귓구멍에 박혀 절대 잊을 수 없는 곰탱이의 짖음만큼은 아주 우렁차니 아주 건강한 노견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쯤되면 쓰다듬어도 되나,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이때다 싶어 손을 들었다. 근데 곰탱이 녀석, 어떻게 알았는지 그대로 뒤를 휙- 돌아가버린다. 허공에 뜬 손이 뻘쭘하다.
쳇. 그래. 오늘 처음 만났는데 벌써 만지는 건 안 되겠지? 이해할게.
근데 조금 가다가 다시 나를 돌아본다. 내가 가만히 있자 다시 돌아가더니, 몇 걸음 안 가서 또 뒤를 돌아 나를 본다. 따라오라는 건가? 발을 움직여 다가가니 어느 정도로 가까워지자 곰탱이가 다시 발길을 옮긴다. 내가 멈춰서 자갈 밟는 소리가 안 들리면 곰탱이도 멈춰 나를 보고, 내가 움직여 자갈 밟는 소리가 들리면 곰탱이도 앞만 보고 걷는다.
어? 이래도 되나? 곰탱이가 사장님네 집 밖으로 나가려 한다. 어, 나간다. 이쯤 돼서 한 번 더 둘러봐도 어째 주변에 사람이 보이질 않는 거야! 아침엔 오만 사람들로 북적거려서 내 정신을 쏙 빼놨으면서! 애써 소리쳐 전부와 사장님을 불러봐도 까마귀조차 울지 않는다. 차라리 어디 구석에 귀신이라도 보이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어림도 없지. 불안한 마음에 다시 앞을 보니 내가 멈춘 걸 알아버린 곰탱이가 고개만 돌려 곁눈질로 날 감시하고 있었다.
빨리 안 가냐며 다그치는 듯한 저 눈빛 때문에 이 상황이 더 버겁다.
그래서 지금 뭐하자는 건데, 산책이라도 가자고?
"산책?"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 곰탱이의 꼬리가 살랑인다. 다그치는 눈빛은 또 그대로인 모습이, 이제는 마치 '그걸 아는 사람이 왜 가만히 서 있어?'라는 것 같다.
"아무나 산책만 시켜주면 만사 오케이다 이거야?"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지만 그 탓에 곰탱이 꼬리는 다시 1자로 섰고, 하다하다 날 한심하게 쳐다보기 시작한다. 내가 졌다. 다시 발을 디디니 그제야 곰탱이도 제 갈길을 간다.
몰라. 난 어제 여기 처음 왔고, 아직 펜션 주변 터도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데 당연히 길? 모르지. 오늘 처음 본 날 산책 동행으로 선택한 건 곰탱이 너니까 길을 잃어도 네 책임이다.
안 프로 없이는 멀리 나가지 않는다던 전부의 말만 믿을 수밖에.
음.
괜히 걱정했다. 곰탱이는 지금 거의 2시간째 자기 집 근처를 벗어나질 않고 있다.
사장님네 집으로 향하는 경사로를 내려가면 외길이 연결된다. 이 길의 오른쪽으로으로 향하면 아주 작은 공터에 낡은 평상이 덩그러니 있고, 몇 걸음 걷다보면 길이 끝난다. 길 끝에는 개울로 내려갈 수 있도록 돌계단이 놓여있다. 반대로 왼쪽 방향에는 아주 긴 외길, 바로 내가 어제 펜션으로 향하며 경험해본 그 길이 개울을 따라 쭉 이어졌는데 개울을 건너는 다리 바로 앞까지가 사장님네 밭까지다.
곰탱이는 정확히 2시간 내내 다리를 절대 넘지 않는 지점에서 외길이 끝나는 평상까지의 구간만을 왔다리 갔다리 하는 중인 거다. 딱 자기 집만큼 말이다. 똑똑한 자식. 길을 잃으면 곰탱이더러 책임을 지라는 둥, 사장님이나 전부가 이 산책을 보면 내게 뭐라고 할지 걱정되다 못해 혼나게 되면 곰탱이더러 책임을 지라는 둥 별 생각을 다 한 나를 반성하게 된다.
전부의 말이 맞았다. 왔다 갔다 하며 다리 쪽에 스무 번은 넘도록 다가선 것 같은데 꼭 돌아서고 말았다. 이따금 다리 근처에 멈춰서 다리 너머의 여러 갈래길들을 우수의 찬 눈빛으로 바라볼 때가 있었다.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곰탱이가 가고 싶어하는 길목을 샅샅이 살펴봐도 아무도 없었으니 이따금 곰탱이 앞으로 나서 같이 가볼 테냐며 유혹도 해봤지만, 곰탱이는 날 빤히 보면서 꼬리를 슬며시 흔들다가도 얼른 돌아서 갔다.
개라는 동물이 욕심을 참고 단념할 수 있는 동물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곰탱이가 특이한 건지, 내가 개라는 동물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상관없다. 그저 같은 길의 같은 구석의 냄새를 셀 수 없이 많이, 또 자주 맡고 있는 저 개가 어떤 마음으로 주인 없는 산책길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을지 가늠해볼 뿐이다.
그래서 같은 길만 돌고 있는 2시간 동안의 산책이 싫지 않았다. 아니, 좋다. 이래서 사람들이 반려견을 키우는구나 납득이 될 정도로 곰탱이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행복감이 느껴진다.
한껏 바닥까지 숙인 머리끝에 냄새를 맡으려 쉴 새 없이 씰룩이는 콧구멍으로 어떤 냄새를 맡고 있을까 궁금하다. 풀 사이사이를 손수 헤치며 수집하는 곰탱이의 냄새 컬렉션을 인간인 나는 백 퍼센트 온전히 느낄 수 없음이 아쉽다. 그러다 혀를 낼름하며 이파리에 맺힌 이슬을 맛보는 너는 무슨 맛을 느낄까. 그러면서도 내내 꼿꼿이 바짝 세운 귀로는 어디까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지금의 이 햇볕이 좋다.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가장 옅고 예쁜 색감만이 걸러져 개울 위에선 화려한 빛을 내며 춤을 추고, 나무 아래로는 다정한 그림자를 짓고, 곰탱이의 하얀 털 가닥가닥마다 따뜻한 윤기를 낸다.
손가락으로 네모를 만들어 눈 가까이 대어본다. 딱 완벽한 한 폭의 그림인 것만 같다. 제목은 <곰탱이와의 산책>으로 할까? 이렇게나 멋진 광경을 사진으로 찍지 못해 아쉬운 마음에 빈 바지주머니를 뒤적여본다. 이 여행이 끝나면 다시는 어디로도 돌아가지 않을 생각으로 휴대폰을 해지했고 후회는 없지만, 좋은 경험을 할 때마다 사진을 찍어 간직할 수 없는 건 가슴이 아프다. 물론 사진을 간직해 가지고 갈 곳도 이젠 없을 거지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외길의 끝으로 또 왔다. 하도 오래 돌아다녀서 다리가 좀 아프다. 안 그래도 계속 평상만 보면 앉고 싶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번에야말로 잠깐 앉아야 살 것 같다. 곰탱이는 지치지도 않는지 냄새 맡기에 여념이 없다. 대체 언제쯤 집으로 돌아가려고 저럴까? 일단 앉자.
평상에 앉자마자 탄성이 튀어나왔다. 역시 사람은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니 눕고 싶고 그렇다. 그대로 뒤로 쓰러져 평상 가득 눕고 싶었지만 동행이 있는 관계로 참았다. 유독 키가 크고 통이 두껍고 잎이 울창한 나무 밑에 놓인 평상의 그늘은 어쩌면 비가 오면 비를 거의 완벽히 막아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잠시 눈을 감아본다. 나뭇잎들이 서로를 부비며 내는 소리. 천천히, 또 성실히 흐르는 개울물 소리. 곰탱이의 발톱이 지면을 밟을 때마다 탁탁-거리는 소리가 내게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면서 탁탁-.
눈을 뜨자 곰탱이가 내 앞까지 와서는 내 냄새를 또 훔쳐 맡고 가버린다. 괜히 한 번 불러본다.
"곰탱아-"
자기 이름이 아닌 것마냥 곰탱이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내가 불러서 그런 거겠지? 사장님이나 전부나, 안 프로가 부르면 헤실헤실 웃으면서 달려가지 않을까. 귀여울 것 같다. 궁금하다. 그렇게 달려가면 널 한가득 안아주겠지?
반려동물들은 좋겠다. 뭘 해도 이쁨 받고 뭐든 함께 하고 싶어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난 축복받은 생명체들. 내가 개로 태어났어도 이만큼 사랑받을 수 있을까.
곰탱이 발톱 소리가 멀어진다. 멀어진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곰탱아- 한 번 불러봤다가 일순간 숨이 턱 막혔다.
아무래도 시골길이다보니, 저 아래 개울과 이 위에 길 사이를 막는 가드레일 같은 게 없다. 개울과 길 사이 높이가 많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개울에서 사람이 서면 웬만큼 키가 큰 남자가 아니라면 계단 없이 올라올 수 없을 정도로 높긴 하다. 이 길은 딱 사람과 차가 지나갈 용도로만 쌓고 깎아놔서 길가 가까이 가보면 절벽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길 위 냄새를 맡느라 정신이 없는 곰탱이가 길가 절벽 부근에 너무 가까이 서 위태로워 보였다. 저러다 떨어질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곰탱이는 주위를 살펴보지 않았고, 그럴수록 절벽 쪽에 가까워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어 곰탱이에게 외쳤다.
"곰탱아- 이쪽으로...!"
그 순간,
풍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