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름에 놀랐는지, 내 손짓에 놀랐는지. 어쨌거나 내 행동에 놀란 곰탱이가 뒷걸음질을 딱 한 걸음만 쳤을 뿐이었는데 그대로 절벽 밑으로 떨어져버렸다. 곰탱이가 신음하는 소리가 절벽 밑에서 들려온다. 개울 위를 허우적대느라 첨벙거리는 소리가 이어진다.
그때부터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곧장 곰탱이가 떨어진 절벽 끝부분으로 가 얼른 아래로 뛰어내렸다. 개울물이 그리 깊어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에 더해 다행으로 개울가에 우거진 풀숲 위로 떨어져서 발목만 담궈졌다. 오래도록 낮볕이 뜨거워 늦여름인 줄 알았더니 개울 속 생태계는 벌써 가을이었나보다. 물이 차가워 발목부터 머리끝까지 순식간에 소름이 끼쳤지만 그럭저럭 견딜만은 하다.
나와는 달리 종아리까지 물에 담긴 채 그대로 굳어 선 곰탱이에게 바로 손을 뻗었다. 이번에도 곰탱이는 나를 피해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선뜻 다리를 움직이진 못해 주위를 둘러보기만 한다. 사시나무처럼 바르르 떨고 있는 곰탱이 덕에 바람도 잘 안 부는데도 파도가 치겠다.
물진 않겠지? 물려도 별 수 없다. 곰탱이 몸에 팔을 뻗어 이리저리 재보는데 도무지 어딜 안아야 하는지 가늠을 못하겠다. 그렇다고 개장수마냥 목덜미 가죽을 잡는 건 아닐 거 아녀? 에이, 설마...
반신반의하며 조심스레 곰탱이의 목덜미를 잡아본다. 꽤 두꺼운 가죽이 잡힌다. 그대로 위로 들어올리니 어디까지 올라가는 건지 그대로 쭉 올라온다. 곰탱이가 불안한 건지, 불만인 건지 싶게 눈으로만 나를 올려본다. 진짜 이렇게 들어야 하는 게 맞다고? 이렇게 큰 개를 가죽만으로 들어올려도 된다고? 얼굴 가죽도 같이 당겨지니 다물린 입술이 열려 누런 이빨들이 드러나버렸다. 송곳니의 용모가 아주 살벌하다. 봐선 안 될 것을 봐버린 송구스런 기분에 잡았던 가죽을 다시 얌전히 내려놓았다. 하마터면 개한테 죄송하다고 말할 뻔했다.
에라이, 모르겠다. 그렇다고 곰탱이가 알아서 움직이길 기다린다거나 도와줄 사람이 올 때까지 소리를 지를 수는 없는 노릇. 눈 한 번 딱 감고 곰탱이를 안기로 했다. 어깻죽지 안쪽을 덥석 잡아 힘껏 들어올려본다. 사실 곰탱이는 겉으로 보기에도 말라서 거죽 위로 갈비뼈가 드러나 보이기까지 한 녀석이라, 아무리 대형견이라지만 무거울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봤자 조금 큰 인형을 드는 느낌이겠지. 아니었다. 그래도 대형견이라고 엄청나게 무거웠다.
허공에 들린 곰탱이는 사지가 일자로 굳어 뻗혀서 안 그래도 물에 젖어 불쌍한 애가 어디 끌려가는 듯도 보이니 누가 나를 동물학대로 신고해도 할 말이 없는 꼴이다. 하지만 알게 뭐냐. 일단 여기서 나가야지. 슬슬 곰탱이가 몸부림을 치려고 하는 것 같다.
바짓단만 젖은 주제에도 온몸이 싸늘해진다. 옷이 스칠 때마다 피부에 끼쳐오른 소름 하나하나가 다 느껴진다. 손에 들린 곰탱이의 떨림에 나도 가감없이 떨린다. 곰탱이를 드는 걸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물속 바닥 돌 표면에 낀 이끼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도 굉장히 노력하는 중이다. 개울에서 나가는 계단이 이렇게 멀었나? 과하게 힘을 준 탓에 시린 발가락이 저리기까지 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안 보여? 바닥을 잘 보면서 가야 하는데 물속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다. 벌써 해가 지기 시작한 거다. 어쩐지 이렇게 개울물이 유독 새까맣더라. 난 또 갑작스런 체온 변화로 눈이 침침해졌나 했지. 아니면 곰탱이의 몸을 어설프게 잡고 있느라 온몸에 힘이 과하게 들어가서 눈에 뵈는 게 없는 건지.
슬슬 곰탱이 몸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려고 한다. 곰탱이를 공중에 던지듯 반동을 줘 다시 손에 잡아보려 하지만 오히려 그 바람에 더 잘못 잡아버렸다. 이러다가는 곰탱이를 놓쳐 물에 완전히 빠뜨릴 수도 있겠다.
곰탱이 사지를 내 몸 바깥쪽을 향해 잡고 있던 것부터 고쳐본다. 곰탱이의 앞다리를 내 왼쪽 위로 걸쳤고, 가슴을 한 아름 안는다. 어색하게 뻗은 뒷다리는 그대로 둔 채 다른 팔로 엉덩이를 안는다. 진작 이렇게 안을 걸 그랬다. 훨씬 편하네-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개의 주둥이 앞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목이 물릴까봐 무섭고 걱정되기도 하다. 아직은 얌전히 몸을 떨기만 하는 곰탱이에게 고마워 죽겠다.
그 사이, 이제 주위는 어스름을 넘어 칠흑 같이 깜깜해졌다. 무슨 놈의 시골에 가로등이 하나도 없냐고 욕이 나오려던 차에 빛이 반짝-했다. 펜션으로 향하는 갈림길에 딱 하나 가로등이 켜졌다. 가로등 빛은 꽤 환해 보였지만 여기까지 닿기엔 택도 없는 거리였다. 펜션에서 직접 설치했는지, 아니면 구청에서 설치한 건지는 몰라도 어떻게 가로등을 꼴랑 하나만 설치했는지 치사하다, 치사해.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다 생각하고 빨리 여기서 나가야지. 한숨 한 번 쉬며 힘을 모아 다리를 움직여본다.
다리가 안 움직인다. 물속의 무언가가 내 발목을 잡고 있다. 분명 엉킨 풀더미 속에 발목이 감긴 걸 텐데... 이상한 생각이 든다. 애매한 가로등 빛이 오히려 내 그림자를 더 짙게 만들어 물속을 더욱 하나도 볼 수 없어서, 오히려 수면 위로 온갖 것이 보인다. 이를테면, 머리카락을 산발로 늘어뜨린 물귀신이 내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이라던가.
갑자기 내가 내려보는 지점을 정확하게 곰탱이가 손수 고개까지 내려 쳐다보자 나는 완전한 패닉에 빠져들었다. 개는 귀신을 본다고 하고, 내 눈엔 이제 일렁이는 수면 위로 물귀신의 빨갛고 까만 눈동자가 날 올려다보는 것까지 보이는데 괜찮을 사람이 세상천지에 누가 있겠는가. 거기에 곰탱이가 내 발쪽 수면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대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곰탱이를 있는 힘껏 세게 끌어안으며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워워워워워워워!!"
분명 내가 비명을 지르기 때문에 덩달아 곰탱이도 짖기 시작하는 걸 테지만 그 순간 나는 이성적인 생각은 개뿔 당장 발목을 잡은 물귀신이 움직여서 곰탱이가 짖는 거란 생각에 잡아먹혀 그 자리에서 발버둥을 치며 펄쩍 뛰어댔다. 개울물이 거세게 첨벙댄다. 곰탱이도 이젠 가만히 안겨있을 수 없어 내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럴수록 난 곰탱이를 더 세게 끌어안았고, 이리저리 엉킨 발과 흔들리는 몸에 저항할 수 없이 결국 넘어져 주저앉아버렸다.
첨벙-
그렇게나 발버둥치던 곰탱이는 드디어 내 품에서 벗어나 몸을 부르르 떨어 턴다. 그리곤 자리에 주저앉아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굳어버린 내 얼굴에 코를 들이밀며 냄새를 맡는다. 나도, 곰탱이도 조용하니 주위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침묵을 유지한다.
이젠 엉덩이까지 물에 빠졌다. 다음은 상체고, 그 다음은 얼굴, 그리고 나면 난 완전히 물속에 가라앉아 물귀신 식구가 되는 건가. 이름 모를 물귀신씨. 당신이 원하는 게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를 만드는 겁니까, 아니면 당신이 승천하고 남은 자리를 채워줄 후계자를 만드는 겁니까. 왜 그게 난데요...
눈물이 난다. 이 거지 같은 펜션. 죽으려면 곱게 집에서 맛있는 거나 잔뜩 먹고 조용히 죽을 걸. 괜히 죽기 전에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며 삶을 정리하겠다는 욕심을 부렸더니 결국 이렇게 물귀신이 될 운명을 맞이하게 됐다.
엿 같은 삶. 내 맘대로 편안하게 살지도 못했으면서 내 맘대로 편하게 죽지도 못하는 저주받은 삶 같으니. 봐라. 대뜸 덜렁 하나 있는 가로등이 깜빡인다. 깜빡- 깜빡- 깜빡-
넋을 놓고 울다보니 불빛이 다가오는 것도 못 느꼈다가 난데없이 곰탱이가 세차게 흔드는 꼬리털에 얼굴이 간지러워 눈을 떠서야 봤다. 멀리서 차 한 대가 가로등을 지나 이쪽으로, 내 바로 위에 섰다. 운전석과 조수석이 동시에 열렸다. 그 안에서 나와 곧장 이리로 뛰어오는 두 사람은 단번에 알아보지는 못했다. 바로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 사람이 전부라는 것을, 길 끝 계단으로 내려온 사람이 사장님이라는 것을,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정면으로 받아 내 앞에 섰을 때야 알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둘이 왜 여기에..."
사장님이 물가를 성큼성큼 내딛으며 다가오자 그제야 곰탱이가 움직였다. 사장님은 냉큼 곰탱이를 품에 안아 번쩍 들어올리며 내게 물었다.
곰탱이랑 산책하다가, 곰탱이가 절벽 끝에 서 있길래 위험해서 불렀더니, 곰탱이가 여기 떨어져서 데리고 나오려다가...
분명 나는 이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실상은 이미 터져버린 울음에 말이 먹혀 웅얼대기만 한 것이었다. 서러워서 무슨 말이라도 하려 했지만 더 이상 나 스스로도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의 방언이었고, 사장님과 전부는 곤란한 눈을 서로 나눌 뿐이었다.
"먼저 들어가세요. 희례씨는 제가 데리고 갈게요."
전부의 말에 한참 머뭇거리시던 사장님은 곧 내가 그토록 오르고 싶었던 계단을 올라가셨다. 계단을 다 올라가서는 사장님이 곰탱이를 품에서 놔 길 위에 내려놨다. 곰탱이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스르르 쓰러져 주저앉았다. 사장님은 그런 곰탱이를 재촉하지 않고 머리를 턱턱 쓰다듬어 주신다. 그래도 놀랐을 텐데 안아서 데려가 주시지-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괜한 생각이었는지 한동안 숨을 고르던 곰탱이는 다시 벌떡 일어났다. 오히려 곰탱이가 사장님을 데리고 집에 가는 듯 또 엉덩이를 씰룩대는 모습이다.
"괜찮아요?"
그런 곰탱이를 보며 나도 어느새 울음이 사그라들었고, 그때서야 전부가 말을 걸어왔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다정한 말투에 서러움이 밀려와 울음이 터지려는 걸 꾹 참았다. 내 두 팔을 잡고 천천히 몸을 들어올려주는 전부의 손이 곰탱이와는 달리 너무 차가워서 또 울음이 터지려는 것도 참았다. 하지만 더 이상 울음을 참지 못했을 때는 다른 것도 아닌, 물귀신이니 뭐니 정신 나간 소리를 해대면서도 그토록 찾아 헤맸던 계단이 바로 세 걸음 앞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몇 개 되지도 않는 계단을 다 오르지도 못하고, 전부의 손을 뿌리치고 주저앉아 울었다. 누가 들으면 고라니가 울고 있나 싶도록 세상이 떠나가라 울부짖었다.
바로 앞에 둔 계단을 찾으려고도 안 하고 포기한 나 자신에게 실망해서. 무엇이든 포기하는 게 쉽지, 나는. 물에 빠진 개 한 마리를 구하지 못하고, 고작 해봐야 발목까지 밖에 오지 않는 물에서도 빠졌다며 허우적대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겁쟁이. 나 자신마저 포기할 수 있는 비겁자. 차라리 물귀신한테 끌려갔어야 했던, 이미 버려진 인생.
"아니에요.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요."
숨을 쉬는 것도 버거워져 이대로 눈을 감으면 모든 게 끝날 것만 같은 순간, 전부가 날 안았다. 당신이 뭘 아냐고 따지고 날 안은 전부의 품을 있는 힘껏 때려댔지만 전부는 그런 나의 폭력을 받아내면서도 날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다정하다. 그 토닥임이 흥분한 내 심장을 다독이는 것만 같다.
"괜찮아. 아무 일도 아니었어."
비명 같던 울음이 멎어가자 피곤함이 내 몸을 짓누른다. 전부의 손길을 따라 심장박동이 맞춰진다.
눈이 감긴다. 이대로 이 품에서 영원히 눈을 감아도 될 것 같...
"희례씨!"
대뜸 어깨를 탈탈 털며 외치는 전부 덕에 정신이 번쩍 차려진다. 순식간에 이성이 돌아온다.
드디어 똑바로 뜬 내 눈을 살피던 전부가 편안하게 웃는다.
"이제 들어가요. 씻고 자야죠."
"......"
"여기서까지 감기 걸리면 서러워서 어떻게 살아요. 그쵸?"
전부가 다시 한번 내 몸을 잡고 일으킨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물에 젖은 옷이 이젠 차갑다 못해 아플 정도다. 그래도 이제는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없는 힘도 쥐어짜야겠다.
제발 헤드라이트를 등진 내 얼굴이, 내 몰골이 전부에게 보이지 않길 바라며, 어느 기점부터는 전부의 손을 뿌리쳐 도망치듯 앞서 갔다. 등 뒤에서 전부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애써 무시해본다.
그러니 사장님이 나와 전부를 위해 가져가지 않았던 차에 올라타는 전부가, 개울물 위에 덩그러니 솟아오른 검은 구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그러자 구체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멀쩡하게 빛을 내는 가로등 빛도 나는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