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거기 계속 그러고 있어요?”
사장님 차를 제대로 주차하고 내린 전부가 공터 한가운데서 수상하게 서성이는 내게 묻는다.
“추울 텐데. 그러다 감기 걸려요.”
그러게, 나도 안다. 안 그래도 바지에 잘못된 것을 지린 사람처럼 바지만 축축하게 젖어서 아주 찝찝하고, 춥다. 추워서 다리 근육이 굳어 움직일 수 없나. 전부가 내게 다가와 가까워지는 만큼 뒤로 물러서는 날 보면 그건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예요?"
저를 멀리하는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 없는 나를 잡는 전부의 질문이 귀에 담기지 않는다. 입술이 열리지도 않고, 할 말이 없다면 펜션으로 돌아가면 되는데도 다리가 움직이지도 않는다. 나는 지금 여기서, 전부의 앞에서 뭘 하고 싶은 걸까.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길래. 아니면 하고 싶지 않은데도 해야만 하는 말이 뭐길래.
“어떻게 알았어요?”
“뭘요?”
“나랑 곰탱이… 어두워서 안 보였을 텐데.”
“아~ 그거요?”
고심해서 꺼낸 말이 겨우 이딴 질문이었다는 게 스스로도 실망스러울 정도였다. 어떻게 알았긴. 나도 그렇고 곰탱이도 그렇게나 비명을 질러댔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았겠다. 전부가 또 웃는다. 그의 답은 뻔할 것이다.
“가로등이 알려주던데요.”
이 인간이 진짜. 장난하나.
보나마나 내 얼굴은 살벌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하고 있을 테지만, 전부는 다 상관없다는 듯 천진난만하게 웃기만 한다.
“아까 가로등 깜빡이던 거 못 봤어요? 탁탁탁- 탁- 탁- 탁- 탁탁탁- 이렇게."
“그게 뭐요.”
“모스부호로 ‘SOS’잖아요.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가로등이 알려줘요.”
“지금 이 상황에 장난이 치고 싶어요?”
“믿거나 말거나. 근데 진짠데…”
얼씨구? 시무룩한 표정까지 만들어 짓는다. 그런 연기에 내가 속아 넘어가나 봐라. 어둠 속에서, 그것도 물속에서 패닉상태에 빠졌었던 사람한테 이딴 장난이나 치다니.
화가 나. 너무 화가 나서 지금 내 입 밖으로 무슨 말이 발사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화가 넘쳐흐른다.
“위험한 상황을 가로등이 어떻게 알아요? SOS는 무슨. 보나마나 고장 난 가로등이겠지.”
“말했잖아요. 믿거나 말거나-라고.”
“애당초 믿을 수 있는 얘기를 해야죠. 가로등이 눈이 있길 해, 살아있길 해? 뭘 아는데? 뭘 알려주는데?”
“희례씨.”
“아니지. 객실이 두 채밖에 없는 펜션에 사장님이랑 관리실장이라는 사람까지 있으면서 왜 중요한 순간엔 아무도 없냐고요. 가로등도 위험한 상황인 걸 안다면서 왜 제일 중요한 사람들이 그걸 모르냐고요!”
“왜 이렇게 화가 났어요?”
“그럼 화가 안 나게 생겼어요? 개를 혼자 풀어놓고 집을 비우는 사람들이 어딨어요? 개가 자주 다니는 길에 절벽이 있는데 왜 울타리도 없냐고요! 원래 시골은 다 이래요? 주인 있는 개도 들개처럼 아무렇게나 풀어놔요? 그러다 길 가던 아무나 물면? 차에 치이면? 어디 도랑에 빠져서 못 올라오면?"
“……”
“곰탱이가 절벽 밑에 혼자 떨어져서 물에 완전히 빠져서, 혼자서는 길 위로 올라오지도 못해서 아등바등하고 있으면, 그럼 그때도 가로등이 알려줄 때 찾으러 갈 거라고 할래요? 깜빡깜빡? 왜 이렇게 사람들이 책임감이 없어요?”
할 말을 다 끝내고 혼자 숨을 고르면서 가만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할 만한 말들이었는데, 틀린 말도 아닌데, 왜 내가 선을 넘은 것 같을까. 가만히 눈을 내리깔고 나를 쳐다보는 전부의 고요한 눈빛을 당당히 마주볼 수 없어서일까. 전부를 볼 때마다, 뭐든 잘못한 게 없는데도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단 생각이 든다. 이번에도 그런 기분인 걸까?
다시 용기내어 고개를 들고 전부의 눈을 받아본다. 긴장감에 침을 안 삼킬 수가 없다. 전부는 말하고 있지 않지만 귓가에 전부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
가로등이 고장났건 말건 찾으러 갔잖아요. 애초에 희례씨가 절벽 끝에 선 곰탱이를 부르지 않았으면 안 떨어질 일 아니었어요?
“희례씨.”
남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러 온 주제에 책임감을 운운할 자격이 당신한테 있어요?
“이제 내가 변명을 좀 해도 돼요?”
전부의 진짜 목소리가 환청을 흩트리며 내게 들려온다. 날카롭고 뾰족하게 내 가슴을 쑤시던 비수 같은 환청이 허구임을 분명하게 알려주듯, 전부의 목소리는 다정하고 따뜻하게 말을 이었다.
“사장님은 펜션 일이 본업이 아니세요. 매일은 아니지만 산림조합에서 건설일을 하시거든요. 그래서 제가 여기서 관리실장이라는 이름으로 일하는 거예요. 진작 이런 부분에 대해서 설명했었어야 했는데, 내가 배려가 부족했어요. 미안해요."
“실장님은 왜 아까 없었던 거예요…?”
“아까는 마을회관에 잠깐 들른다는 게 시간이 좀 지체돼서. 설마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고개가 절로 끄덕끄덕-여지는 걸 아차 싶어서 아닌 척해본다.
“그리고 곰탱이 일은 정말 사과할게요. 펜션 문처럼 집 현관문에도 곰탱이 전용 문이 있어서 가족들이 집에 있을 때만 열리게 되어 있는데, 강아지문 개폐 시스템이 단단히 망가졌나봐요. 빨리 고칠게요.”
“네, 뭐, 저야 뭐. 곰탱이가 또 무슨 일 생길까봐.”
사장님도 본업이 따로 있으시다고 하고, 안 프로는 가끔 오나보고, 전부가 상주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오늘처럼 다른 일이 생겨 자리에 없을 때 하필이면 곰탱이가 홀로 길거리를 활보하게 되면 어쩌나 싶은 걱정은 진심이었다. 강아지문 개폐 시스템이란 게 뭐고 어떻게 고친다는 걸까 하는 순전한 호기심은 아주 작은 덤이었고.
그런데 이 양반은 왜 또 저렇게 느끼하게 웃으면서 쳐다보는 걸까.
“못될 거면 못되고, 착할 거면 착해요.”
“네?”
“하나만 하라고요. 그게 정신건강에 좋으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희례씨가 했던 말, 틀린 말 없었어요. 다 맞아. 당연히 화날 일이었고. 사장님도 나도 없었는데 곰탱이를 대신 지켜봐 준 희례씨께 정말 미안하고 감사할 뿐이에요.”
“그런 말을 왜 하는데요?"
“맞는 말인데도 상대가 불편할 것 같은 말이면 오히려 희례씨가 미안해하는 것 같아서요.”
“누… 누가 미안해한다고 그래요?”
“하긴. 내가 워낙 성스럽게 생겨서 사람들이 나만 보면 고해성사하고 싶어서 난리긴 하지.”
“또 잘난 척.”
전부가 하하 크게 소리내어 웃는다. 그 모습에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한편, 정곡을 찔려서 가슴 안쪽이 쓰라릴 정도다. 어떻게 알았을까? 누군가에게 화를 내면서도 상대가 내 말에 불편해질까봐 눈치를 보다가 도리어 잘못한 사람이 되는 건 내 오랜 고민거리였다. 얼굴에 그게 다 쓰여있나? 괜히 얼굴을 한 번 주물러본다. 이 집에 귀신이 씌었다면 그 귀신은 전부가 아닐까.
“어떻게 그렇게 다 알아요? 난 오늘 아침에 처음 본 사람인데.”
“희례씨가 알기 쉬운 사람인 건 절대 아니고, 내가 원래 그래요. 사람을 잘 알아요.”
“좋겠네요.”
“이런 내가 부러워요?"
“부럽죠. 난 나도 잘 모르는데."
"어느 쪽이에요?"
“뭐가요?”
“남에 대해 잘 알고 싶은 거예요, 희례씨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싶은 거예요?”
평소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질문과 평소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말들이었다. 지금 내가 왜 이런 대화를 오늘 처음 본 사람과 주고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전부의 질문에 나 스스로에게도 답을 내놓지 못하겠다.
원래 사람을 잘 안다는 전부가 나는 왜 부러울까? 나는 무엇을 잘 알고 싶은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 누구도 모르는 채로 있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니면 일단은 다 알기 싫은 건가?"
전부가 말했다. 내가 한 말인가 착각할 정도로 내 마음을 너무 잘 아는 이 사람이 수상할 정도로 편하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모른 채로 있어볼래요.”
“그럼 희례씨는 내가 알아줘도 돼요?"
“나만 까발려지는 건 억울하니까, 실장님에 대해서도 알려줘요."
“알았어요. 그리고 일단 희례씨가 얼른 따뜻한 물로 씻어야겠다는 걸 알았어요.”
어린애를 달래듯이 웃는 전부는 언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어느샌가 펜션 앞에 선 내 어깨를 슬쩍 민다. 전부가 대신 문을 열어줬는데, 현관문이 아닌 나도 몰랐던 펜션 뒷문을 열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