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는 쉼 없이 밀려왔다가 사라진다.
그날, 바닷가에 서서 파도의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물소리가 아니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그 속삭임에는 얘기가 담겨 있었다.
바람이 실어오는 파도의 노래는 낮고도 부드러웠다. 물거품이 부서질 때마다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오래된 친구가 귓가에 조용히 말을 걸듯, 파도는 내게 뭔가를 전하고 있었다.
"들리니? 여기에 온 모든 것들이 우리의 얘기를 듣고 갔단다."
속삭임 속에는 바다가 품은 시간의 흔적이 담겨 있었다. 수백 년, 수천 년을 지나온 물결들은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그 자국을 지우며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파도는 모든 것을 끌어안았다. 기쁨과 슬픔, 시작과 끝, 그리고 우리가 버린 수많은 기억들까지.
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속의 무거운 것들이 하나둘씩 가라앉는다. 파도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내가 품고 있던 고민과 아쉬움도, 파도의 속삭임 속으로 스며들어 더 이상 날 괴롭히지 않는다.
그날 파도와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대화였다. 바다는 내게 '괜찮다'라고 말했다.
"모든 것은 이렇게 흘러가야 해. 너도 너만의 속도로 흘러가면 돼."
해가 저물고 바다는 어둠 속에 잠겼다.
하지만 파도의 속삭임은 계속되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마치 내 안의 두려움과 불안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또 다른 날을 맞이할 용기를 주는 것 같았다.
그날의 파도는 삶의 한 조각을 선물했다.
무한히 반복되는 파도의 속삭임처럼, 우리도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바닷가에서 들은 파도의 속삭임은 여전히 마음 어딘가에서 잔잔히 울리고 있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