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72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헬렌 켈러. 교사와의 첫 만남

by 은파랑 Feb 03. 2025




헬렌 켈러. 교사와의 첫 만남


눈이 없이도 빛을 보았고, 귀가 없이도 음악을 들었다.

그녀의 세계는 암흑과 침묵이었으나, 그 속에서도 별은 반짝였고, 바람은 노래했다.

그녀의 이름은 헬렌 켈러.

그리고 그녀의 삶을 비춘 별빛은, 하나의 손길로부터 시작되었다.


햇살이 벽을 타고 흐르던 봄날, 한 소녀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바람을 좇았고, 그녀의 손끝은 허공을 더듬었다.


그러나 그날, 처음으로 손끝에 세계가 닿았다.


"물(water)."


앤 설리번이 그녀의 손을 잡고 차가운 물을 흘려보냈을 때, 헬렌은 떨리는 손가락 끝으로 단어를 더듬었다.

손바닥 위를 흐르는 물은 액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였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무언가 부서지고, 다시 태어났다.

침묵의 감옥이 균열을 내며 허물어지고, 언어라는 빛이 틈 사이로 스며들었다.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그리고 세계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헬렌의 깨달음은 언어 습득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지 심리학의 전환점이었다.

언어란 기억과 감각의 그물망 속에서 의미를 형성한다.

그녀는 손끝으로 느낀 물과 ‘water’라는 단어가 연결되는 순간, 개념적 틀(schema)이 형성되는 것을 경험했다.


심리학자 비고츠키는 언어를 ‘사고의 도구’라 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소리가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날, 헬렌은 단어 하나를 배운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세계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헬렌 켈러가 『내가 살아온 이야기』에서 밝혔다.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자신을 찾았다."


그녀의 손끝에 닿았던 물줄기는 차가운 액체가 아니라, 존재의 선언이었다.

그녀는 단어를 얻고, 자신을 얻었다.


그녀의 세계는 거대한 밀실이었다.

소리도, 빛도 없는 방.

그러나 작은 손길 하나가 벽을 두드렸다.


물이 흘러내린 순간, 단어가 뿌리내렸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마른땅이 갈라지고, 틈새로 처음으로 새싹이 돋았다.

그것은 ‘water’라는 이름의 빛나는 새싹.


그날, 헬렌은 다시 태어났다.

손끝으로 빛을 보고, 단어로 세상을 듣는 법을 배웠다.

앤 설리번의 손길은 가르침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영혼을 구원하는 성스러운 손길이었다.


우리는 때 세상을 보면서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한다.

하지만 헬렌은 빛을 볼 수 없는 눈으로, 침묵 속에서도 세상의 음악을 들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세계를 만졌고, 언어라는 마법으로 삶을 새롭게 써 내려갔다.


우리도 그녀처럼, 세상을 손끝으로 느끼고 있는가?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을 ‘water’라는 단어처럼 깊이 받아들이고 있는가?


눈을 감고 손을 뻗어보라.

당신이 잡고 있는 것이 공기가 아닌, 또 하나의 ‘water’가 될 수 있도록.


은파랑



이전 15화 안네 프랑크, 첫 번째 일기를 쓰던 날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