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여명이 채 깨어나기도 전에
길 위에 한 줌 빛으로 내려앉아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리던 영혼이 있었다.
마더 테레사.
이름은 금빛 종처럼 울리며,
밤하늘을 헤매던 별들을 모으듯 가난한 이들을 품에 안고자 한 마음이었다.
마더 테레사는 인도의 작은 골목을 걷다가,
허기를 감춘 채 마른 잎사귀처럼 웅크리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바람은 홀로 몸부림치며 먼지를 일으켰고,
골목은 외로움과 무심함으로 뒤엉킨 세상을 비유하듯
콧등 시린 바람 소리만 울려댔다.
그때 테레사는 조용히 아이 곁에 다가가
고요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나는 너와 같은 모습에서 하느님의 형상을 본단다.”
아이의 눈은 놀라움으로 번쩍였다.
누군가 ‘가난’이라는 굴레 대신,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준 건 그때가 처음이었을지 모른다.
아이는 테레사의 손길이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테레사는, 아이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을 보며
‘사랑은 결코 쪼개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깊이 새겼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진정한 공감은 타인의 세계를 내 눈으로, 내 가슴으로 함께 느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더 테레사가 아이에게 건넨 첫 대화는,
바로 이 공감의 출발점이었다.
가난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동등한 인간’으로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그것이 테레사가 가난한 이들에게서도
‘하느님의 형상’을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공감이 ‘상호 주관적 인식’을 통해
치유와 회복의 힘을 불어넣는다고 본다.
누군가 내 고통을 알아주고,
나의 존재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 줄 때,
삶의 무거운 짐은 잠시나마 가벼워진다.
마더 테레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의 공포나 결핍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사랑과 연민, 그리고 살아있음을 발견하게 하는 신비로운 빛입니다.”
가난한 이는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나의 인간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스승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테레사의 말처럼,
그들은 우리 안의 숨은 선의와 온기를 되살리는
‘미지의 교실’과 같다.
가난한 이들과의 첫 대화는
메마른 땅에 떨어진 작은 씨앗과 같다.
겉보기엔 볼품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바람과 비를 맞으면
어느덧 생명의 싹이 돋아나는 것처럼,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공감과 사랑이
언젠가는 크고 울창한 숲으로 자라날 수 있다.
테레사의 눈빛은
사막에 피어오르는 오아시스 같은 희망이었고,
희망은 아이의 마음 밭에 꽃씨처럼 심어졌다.
가난과 결핍은 영혼의 마른땅을 영영 침묵 속에 가두지 못했다.
그곳에는 테레사의 손길처럼,
사랑이라는 이름의 ‘빛의 비’가 내려와
생명을 깨웠다.
가난한 이들과의 대화는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니다.
누군가 마음의 양식을 구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에게 따뜻한 눈길 한 줌,
따스한 말 한 모금이라도 건넬 수 있다.
마더 테레사는 처음 손을 내밀 때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랑의 언어는 꼭 발음이 있어야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때론 침묵 속의 시선과 한 줌의 온기가
인생을 바꾸는 대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골목의 시간은 아직도 흐르고 있다.
메마른 땅에도 봄은 온다.
그리고 봄을 기다리는 마음속에서,
우리는 매일같이 첫 대화를 시작한다.
테레사가 가르쳐준 빛, 온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가슴 한편에서 조용히 피어나고 있으니.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