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다른 속도로 흐른다

eunparang

by 은파랑




사랑은 다른 속도로 흐른다


사람마다 사랑에 빠지는 속도는 다르다.

누군가는 처음 눈이 마주친 순간 마음을 빼앗기고, 누군가는 긴 시간 곁에 머물다 어느 날 문득 사랑을 자각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성격의 차이일까?


미국 심리학자 조엘 포스터(Joel Foster)의 연구는 여기에 ‘인지 처리 속도(cognitive processing speed)’와 ‘감정 민감성(affective sensitivity)’이라는 개념을 연결한다. 그는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속도는 타인의 감정에 반응하고 해석하는 개인의 심리적 속도와 연관된다고 말한다.


빠르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은 감정에 민감하고 직관적이다. 첫인상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신호들. 즉 눈빛, 말투, 몸짓을 빠르게 읽고 감정에 깊이 반응한다. 이들은 사랑이 직감처럼 찾아온다고 말한다. 반면 느리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은 조심스럽고 관찰자적이다. 관계를 차근히 쌓아가며 상대를 이해하고 자신 안의 감정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이들은 신중함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고자 한다.


속도가 다르다고 해서 사랑의 깊이나 진정성이 다른 것은 아니다. 누구는 달처럼 천천히 떠오르고 누구는 불꽃처럼 빠르게 타오를 뿐. 중요한 것은 사랑이 나에게 진실한가이다. 사랑의 속도는 각자의 마음이 자신만의 리듬으로 사랑을 불러오는 방식이다.


리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랑이 아닌 건 아니다. 사랑은 나무처럼 천천히 자라나기도 하고 불꽃처럼 순식간에 타오르기도 한다. 어떤 사랑은 시간이 쌓이면서 깊이를 더하고, 어떤 사랑은 첫눈에, 마음속에 파고들어 강렬한 흔적을 남긴다. 사랑의 속도가 서로 다른 이유는 사람마다의 심리적 특성, 관계의 맥락 그리고 사랑이 가진 본질적 다양성에 있다.


그림 프리다옥


빠른 사랑은 첫눈에 반하는 순간 시작되기도 한다.

상대의 외모, 매력, 말투 혹은 익숙하지 않은 친밀함이 강한 감정을 일으킬 때 사랑은 급속도로 피어난다. 심리학은 이를 리비도나 도파민, 옥시토신과 같은 화학적 반응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공통된 가치관이나 취향을 짧은 시간 안에 확인했을 때 “이 사람은 나와 통한다.”라는 느낌이 들게 되고, 이는 관계를 가속한다. 영화처럼 제한된 시간, 여행 중에 만남, 위기 상황을 함께 겪는 경우도 사랑을 빠르게 형성한다. 정서적 결핍이 큰 사람은 사랑의 대상을 만났을 때 더 빠르게 다가가려는 경향이 있다. 외로움이나 불안이 관계를 서둘게 만들기도 한다. 반면 천천히 자라는 사랑은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형성된다. 오랜 친구처럼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사랑은 서서히 깊어진다.


미국 뇌신경과학자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nberg)의 ‘사랑의 삼각형 이론’에서 말하는 친밀감(Intimacy)이 중심이 되는 사랑이 바로 이렇다. 천천히 사랑을 키우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신중히 탐색하며 관계 속에서 자신이 안전한 지를 먼저 확인하려 한다. 과거의 상처나 성격적 특성도 사랑의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 사랑은 두 사람의 속도가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다. 한 사람은 마음을 빠르게 열고, 다른 사람은 시간을 두고 다가간다. 그럴 땐 두 사람은 중간 지점에서 조율하며 사랑의 리듬을 맞춰간다.


천천히 자라는 사랑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이 쌓이면서 깊이를 더해간다. 따뜻한 배려, 작은 성실함, 같이 웃었던 기억이 뿌리처럼 관계를 단단하게 만든다. 열정적 성향의 사람은 빠르게 사랑에 빠질 가능성이 크고, 신중하고 분석적인 사람은 사랑을 조심스럽게 키워나간다. 파티나 여행처럼 감각적 만남은 사랑을 재빨리 성장시킬 수 있지만, 학교나 직장처럼 일상 속 만남은 사랑이 천천히 싹트게 만든다. 짧은 연애를 기대하는 사람은 감정을 빠르게 표현하고, 장기적 관계를 원하는 사람은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속도가 빠르다고 사랑이 얕은 것은 아니다.

천천히 자란 사랑이라서 항상 안정적인 것도 아니다. 사랑의 깊이는 속도보다 ‘이해’와 ‘존중’에서 비롯된다. 사랑은 정답이 없는 여정이다. 불꽃처럼 빠르게 타오른 사랑도 오랫동안 꺼지지 않을 수 있고, 천천히 자라난 사랑도 어느 순간 흔들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속도를 함께 조율하는 일이다. 빠르게 달려도 좋고,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 길 위에서 서로의 손만 놓지 않는다면 그것이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속도일 것이다.


은파랑




은파랑 콘텐츠 에세이 '토닥토닥'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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