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니까 당신이 필요하다

eunparang

by 은파랑




사랑하니까 당신이 필요하다


“미숙한 사랑은 ‘당신이 필요해서 사랑한다’라고 하지만, 성숙한 사랑은 ‘사랑하니까 당신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에리히 프롬의 일갈이다.


미숙한 사랑은 결핍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상대를 사랑한다. 반대로 성숙한 사랑은 사랑 자체의 선택과 헌신에서 출발하고 결과로 “당신이 필요하다”는 감정이 자연히 생긴다.


의존은 의존을, 자유로운 결속은 자유 속의 연결을 지향한다. 성숙한 사랑은 상대를 붙잡기보다 자율성과 책임, 배려, 존중 위에 서 있다.


결핍의 언어에서 충만의 언어로, “없어서”가 아니라 “넘치기 때문에” 하는 사랑, 충만함이 관계를 단단하게 만듭니다.



처음엔 내가 비어 있다고 믿었다.

빈자루처럼 바스락거리며

누군가의 손길로만 서 있을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필요를 사랑이라 불렀다.

외로움이 먼저 오고

그 뒤를 따라 “사랑한다”는 말이 헐떡이며 달려왔다.

사랑은 등받이였고 지팡이였고

넘어지지 않기 위한 임시 기둥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햇빛이 유리잔을 통과해 책상 위로 흘렀다.

투명한 그림자를 보며 알았다.

사랑은 채워 달라고 외치는 목마름이 아니라

넘쳐흘러 어딘가를 적시는 물이다.


먼저 사랑하기로 했다.

조건보다 사람을

외로움보다 눈동자를

약속보다 오늘의 온도를

그때 문장이 바뀌었다.

“당신이 필요해서 사랑해요”가 아니라

“사랑하니까, 당신이 필요해요.”


필요는 결핍의 이름이 아니라

함께 있을 때 더 멀리 들리는 울림의 다른 말이 되었다.

너와 걷는 길은 더 느리지만

느림은 지연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손을 잡는 건 서로를 붙드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자유가 흔들리지 않게 받쳐 주는 일임을 알았다.


사랑은 큰 제스처로 증명되지 않았다.

차가운 컵에 물을 갈아 주는 작은 오후

“먼저 자, 내가 불 끌게” 같은 문장

돌아서는 뒷모습까지도 함께 생각하는 시선

사소함들이 모여

하루의 테두리를 둥글게 만들었다.


이제 나는 비어 있지 않다.

채워졌기 때문에 비울 수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필요하다.


필요는 구속이 아니라 방향이고

방향은 우리를 함께의 중심으로 데려간다.


밤이 내려오면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고요를 얹고 앉는다.

말이 적어도 마음은 넓어진다.

넓음 속에서 다시 확신한다.

사랑의 순서는 언제나 같다.

먼저 사랑하고

다음에 비로소 “필요하다”라고 말하게 된다는 것을


은파랑




은파랑 콘텐츠 에세이 '토닥토닥' 출간

https://myip.kr/ueU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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