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바쁩니다. 정말 많이 바쁩니다. 사실 그간 한국에서 회사 일을 하는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엥간히 바쁜 게 아니고서야 함부로 바쁘다는 말을 하기 조심스러웠습니다. 그 친구들은 '정말 많이' 바빴으니까요. 그렇게 바쁨에도 불구하고 주위 모두가 그렇게 사니, 본인들이 얼마나 바쁜지 크게 깨닫지 못하는 게 못내 안쓰러웠습니다. 여튼, 지금 저는 그 친구들에게도 떳떳하게 '내 요새 바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바쁩니다. 얼마 만에 이렇게 바빠보는 건지, 내심 한 켠으로는 오래된 옛 친구와 재회한 느낌이 들기도 해서 좀 묘합니다. 불평이나 힘듦 우울함 뭐 이런 감정이 아니라 '와, 진짜 간만에 이래 바빠보네'라는 감탄? 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쁘고 있자니, 마음 한 구석이 뭔가 헛헛 합니다. 채워지지 않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게 있습니다. 본래 사람들과 시끌벅적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 조용히 있는걸 더 좋아하는데, 느닷없이 바빠졌다고 갑자기 사람이 그리운 마음이 드는 게 상당히 생경합니다. 89% T인 제 논리적 접근법으로는 쉬이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 그리움이라는 게 어떤 것이냐 하면, 음.. 뭔가 끊임없이 편안한 친구에게 제 이야기를, 제 상황을 토로하고 싶은 기분입니다. 나는 요새 이러이러해서 바쁘고, 이러이러한 일을 당면해서 해결하고 있고, 이러이러한 계획이 있다고.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사람을 늘 멋지다고 생각해 왔지만, 실상 제 마음에 이런 욕망이 자리 잡고 있는 걸 보니 좀 찌질해 보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 그런 무게 있는 멋진 사람이 되긴 그른 것 같습니다.
다양한 도전을 하며 인간적으로 기술적으로 그리고 능력적으로 매일 조그씩 성장하고 있는 요즘 매일 마주치던 수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NPC가 아닌 형형색색 다채로운 주인공으로 보입니다. 누군가는 초록으로 누군가는 청록으로 또 누군가는 연두로, 연녹으로, 짙은 녹색으로, 비슷한 듯 다른 자기만의 색이 아름답습니다. 차량등록 사무소의 스타일이 힙한 직원분, 금목걸이에 한 덩치 하시는 미소가 따스한 미용실 사장님, 늘 수줍어 보이시는 카페 사장님, 여리여리한 겉모습과 달리 불닭볶으면을 품고 계시는 이웃 원장님, 모두 자신만의 색, 자신만의 고충, 자신만의 행복을 안고 오늘도 하루를 걸어가는 모습에,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제게 큰 위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