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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꿈을 이룰 것인가

4. 제주 한림 1소대 해안경비단

by 이생각

개꿀 제주 무료 숙식 패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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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근처 식당에서 무슨 맛인지도 모를 쌈밥을 먹고 입소를 했다. 학기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없이 입대를 하다 보니 슬픔, 걱정, 긴장 등의 감정을 느낄 새도 없었다. 그냥 어느 날 눈 떠보니 훈련소 안이었다. 일반 군대보다 개인 정비 시간이 많다는 말을 듣고 나는 일찌감치 의경에 지원했었다. 날짜도 전과 시험을 치르고 곧장 입대할 생각으로 다 계획하고 정해뒀었다. 훈련소는 의경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초 군사 훈련, 주말 종교 행사, 간간이 있는 조교들의 얼차려. 다만 의경이라 따로 경찰 교육을 2주 받아야 해서 논산에서의 시간은 남들보다 1주 짧은 4주였다. 훈련소서의 시간은 생각지도 않게 몹시 즐거웠다. 좋은 동기들을 만났고 함께 이런저런 일들을 헤쳐나가니 끈끈한 우애도 생겼다. 생활 면에서도 훈련소 생활은 나와 썩 잘 맞았다. 매일 주어진 일정으로 하루가 알차게 짜여있으니 사회에서는 늘 있던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집 걱정, 옷 걱정, 밥 걱정, 돈 걱정. 이런 고민 걱정 따위 없이 좋은 사람들과 매일 무언가를 함께 배워간다는 게 냥 즐겁고 행복했다. 이거 진짜 내가 군인 체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훈련소 3주 차 때 우리는 모두 종이를 한 장씩 받았다. 훈련소가 끝난 후 어디 지역으로 가고 싶은지 1부터 8순위까지 적는 종이였다. 당시 대게의 훈련생들이 주말마다 집에 갈 수 있다는 이유로 경에 지원했기에 1순위는 집이 있는 지역으로 적는 게 당연시됐다. 지만 나는 종종 집에 간다는 게 뭐 그리 좋은 건지 이해를 못 했다. 그보다는 이건 새로운 지역을 알아갈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생돈 들여 다른 곳으로 여행들을 가는 마당에, 아니 숙소도 밥도 다 제공되는 2년짜리 여정이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여행(?)을 갈까 고민하던 중 재밌는 소문을 들었다. 뺑뺑이를 돌리다 1-8순위 다 떨어지고 진짜 오지게 재수가 없으면 제주도로 가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세상에. 제주도니. 2년간 무료 숙식 제공에 다달이 용돈까지 주는 제주 생활.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곧장 냅다 제주도를 1순위로 적고는 2-8순위 역시 이때가 아니면 가보기 어려울 흥미로운 곳들로 적어 넣었다. 그렇게 수료식을 앞둔 4주 차 막바지가 되고 발령지가 나왔다. 내가 남은 군생활을 보낼 곳은, 제주도. 그 기쁜 소식에 마지막 밤은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보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논산에서 청주로 간 뒤 그곳 어디 공항에서 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갔다. 제주 공항에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남동쪽 표선에 위치한 경찰학교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지고 하늘은 진한 남색을 띠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연병장에 도열한 뒤 올려다보았던 하늘. 그때의 하늘은 사진을 찍은 듯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짙은 남색의 겨울 밤하늘 위로 수없이 흩뿌려진 별들. 정말, 정말 아름다웠다.


경찰학교의 생활은 훈련소보다 훨씬 편하고 좋았다. 맛있는 밥. 따뜻한 침상. 가벼운 훈련. 2주간의 달콤한 시간이 지나고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이제 제주도 어디 지역으로 가게 될지 발표만이 남았다. 제주도 의경에는 본부와 레이더 소대를 제외한 9개의 중대가 있었고 이들 중대의 역할은 흔히 말하는 의경과는 좀 달랐다.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게 아닌, 육군과 비슷하게 경계와 전투를 위해 존재했다. 제주도 해안을 경계하며 혹시 모를 북한 잠수정의 침투를 저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훈련생들 대다수가 제주 출신이고 또 대게 제주시에 본가가 있었기에 모두들 제주시를 관할하는 123중대에 가고 싶어 했다. 그래야 운이 좋으면 제주시에 있는 소대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니까. 나는 다른 이유로 123중대에 가길 바랬다. 123중대 중 한림에 있는 소대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협재 해변 바로 근처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간절했기 때문일까 운이 좋게도 나는 123중대로 발령 났다. 중대에 도착하자마자 하게 된 중대장님과의 면담에서 한림으로 가고 싶다 말씀드렸고, 그렇게 신기하게도 또 놀랍게도 나는 내가 바라는 곳에서 군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제주해안경비단 한림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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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데리러 온 한림 소대 선임들은 내가 한림에 가고 싶다고 지원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몹시 반겨주었다. 제주 사람이 아닌데 제주도를 자처해서 온 것도 신기한데 거기다 고향도 아닌 한림을 콕 짚어 지원했기 때문이다. 선임들은 어떻게 한림이 가장 좋은 곳인지 알았냐며 잘 선택했다고 말해줬다.


선임들의 말은 빈 말이 아니었다. 한림 소대는 정말 좋았다. 자상하신 소대장님, 따뜻한 소대원들, 눈부시게 푸른 바다, 시원한 바닷바람, 비양도가 마주 보이는 아름다운 금능/협재 해변. 물론 한 두 명 모난 사람이 있긴 했지만 의경이라 나름 시험도 치고 면접도 보고 걸러 들어와 그런지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처음 배운 업무는 '작전'이었다. 작전은 모두가 처음 거쳐가는 보직이었는데, 밤에 해안 경계를 서는 업무였다. 늦은 저녁부터 밤까지 혹은 밤부터 새벽까지 개인화기를 들고 서넛이 조를 짜 해안경계소에서 경계를 섰다. 무전기, 레이더, TOD 사용법을 배웠고 수하, 비상시 행동요령 등도 숙지했다. 깊은 밤, 한창 청춘인 청년들이 고요한 제주 밤바다를 함께 보고 있자면 속 깊은 얘기를 하기 마련이었다. 개인사, 추억, 영웅담, 지난 연애, 전역 후 미래. 참 좋은 시간들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알아갈 수 있었고 그들을 통해 다양한 삶을 접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서로 믿음을 주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도 쌓았다. 새벽 한 두시쯤 되면 먹던 튀김우동, 하품을 쫓아내려 마시던 믹스커피, 야투경으로 본 별이 가득 찬 밤하늘 역시 돌이켜 보면 그저 소중한 시간이었다.


작전 업무가 익숙해졌을 때쯤, 소대에서 그나마 학력이 높다는 이유로 보직을 '상황'으로 옮기게 되었다. 상황이란 소대 내에서 상주하며 근무표를 짜거나, 중대에 여러 일들을 보고 하는 등 행정 업무를 하는 보직이었다. 행정반에서 근무했기에 우선 몸이 편했고, 비록 내부망이기는 하지만 근무하면서 컴퓨터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상황 일을 한지 한 두 달쯤 지났을 무렵부터는 전역 후 계획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향 화학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기에 어떻게 향 화학자가 될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기존 계획대로 전과를 해 홍대에서 화학공학을 배우는 것은 더 이상 선택지가 못 됐다. 먼저 이 한심한 한국 대학 시스템 속에서 발전도 없이 학위만을 위해 돈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더불어 어차피 내가 치른 전과 시험이 자대 배치 후 확인해 보니 무효 시 되어있었다. 학교에 전화를 해 이게 무슨 경우냐고 물어보니 다음 학기에 복학하지 않는 지원자에 대해서는 전과 신청 및 시험 결과가 무효 처리된다는 것이었다... 하... 어쨌든 그래서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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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화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화학을 공부해야 했고, 한국에서는 어떤 대학이든 구조적 문제로 답이 없으니 자연스레 외국으로 눈을 돌렸다. 당연히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에서 살다 죽을 거로만 생각했기에, 살면서 단 한 번도 외국을 여행지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 없었기에, 외국에 나가 여행 이상의 무언가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먼저 엄습했다. 그래도 별 수 없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알아나 보자는 식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영어권 나라이면서 우수한 대학들이 있는 곳을 찾아보았다. 무슨 세계 대학 100순위를 알려주는 외국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미국, 영국, 캐나다 그리고 호주의 대학들이 순위에 있었다. 다음으로 이 다섯 나라들의 대학 교육 시스템이 어떤지, 어떻게 한국과 다른지 알아보았다. 미국과 캐나다는 한국 대학 교육 시스템의 모티브였고 때문에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영국과 호주가 미국, 캐나다 그리고 한국과 달리 전공과목만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나아가 절대평가로 학생들 간 협력과 토론을 장려하는 좋은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전공만 다루기에 영국과 호주에서는 학사 기간도 3년이었다. 향 화학자는 결국 연구하는 직종이기에 못해도 최소 석사 정도의 지식과 전문성은 필요하다고 생각해 석사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도 알아보았고, 영국이 가장 좋은 선택지로 떠올랐다. 전역 후 각 나라의 좋은 대학에서 석사까지 졸업하는 대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도 세세하게 조사했고 이 부분에서 역시 영국이 가장 좋은 선택지로 꼽혔다. 상황경으로 근무하며 이 모든 조사를 마치는 대에 꼭 6개월이 걸렸다.


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어떻게 영국에서의 학석사 비용을 충당하는 것인가였다. 부모님의 간섭을 원치 않았기에 홀로 모든 비용을 감당하고 싶었다. 만만치 않은 비용이었으나 사실 가만 따지고 보니 한국과 영국에서의 대학 교육 비용이 그렇게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막연히 유학을 비싸다고 생각했건만 영국에서의 학석사 + 생활 비용과 한국에서의 학석사 + 생활 비용을 조사해 나란히 적어놓고 보니 둘 다 1억 언저리가 들었다. 비슷한 금액이 드는데 한국에서는 학사 4년 석사 2년에 총 6년이 걸리며 거지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게 되는 방면 영국에서는 학사 3년에 석사 1년으로 총 4년이 걸리며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여하튼 1억이나 되는 돈을 어떻게 충당할 수 있을까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가능한 한 모든 수단과 이상적인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정말 세세한 계획을 세우고 모든 것을 계획대로 해낸다는 가정하에 영국 학석사 비용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딱 한 가지 경우의 수가 나왔다. 한국에서 NCUK라는 영국 학사 파운데이션 과정을 수석으로 마치면 6000파운드를 받을 수 있었고, 거기에 영국 셰필드 대학교를 한국인 수석으로 입학하면 3년 총학비의 50%를 감면받을 수 있었다. 또한 국제 학생으로서 우수한 파운데이션 성적으로 화학을 공부하면 매년 2500파운드의 할인 혜택도 있었다. 끝으로 Industrial placement가 포함된 학석사 통합 과정 4년을 가게 되면 회사에서 인턴을 하는 1년 간은 약 2만 파운드 가량을 오히려 벌며 석사를 할 수가 있었다. 여기에 더해 아버지 회사 회계 팀에 연락해 보니 기존에 아버지를 통해 회사에서 받던 학비 지원 혜택이 외국 대학에도 어느 정도 적용이 된다고 했다.


이 모든 게 이루어진다면 가능했다. 영국에서의 공부가. 때문에 가능하게 해야만 했다 이 모든 것을. 정말 절박했기에 치열하게 그리고 몹시 효율적으로 노력했고 이후의 글에서 서술하겠지만 놀랍게도 이 모든 것들이 결국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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