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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와 초콜릿과 벽지

by 이생각

"뭐 좋다고 그렇게 퍼다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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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엄마와 아빠가 항시 투닥거리는 단골 주제가 있습니다.



엄마: "뭐 좋다고 그렇게 퍼다주냐"


아빠: "아니 고맙고 그러니까..."



남에게 베푸는 걸 좋아해 늘 뭔가 드리는 아버지와 그걸 못마땅해하시는 어머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엄마처럼 '아니 왜 이득도 없는 걸 그렇게 막 드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최근 들어 자꾸 아빠처럼 생각하는 스스로를 발견 합니다. 괜히 친절하신 수선집 사장님께 옷 맡기러 갈 때면 두부과자라도 하나 드리고 싶고, 같은 면에서 오셨다는 정비소 사장님께 드리려고 일본 면세점에서 초콜릿 하나 더 챙기고, 편의점에서 나올 때 따뜻한 꿀홍삼 하나 더 사서 택시 아저씨께 드리고. 돈이 막 넘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리 사람들에게 뭘 주고 싶은지. 참, 이상합니다.


아마 어느 순간 그냥, 우리 모두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좋은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공동체에 내가 속해 있단 걸 깨달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에게 베풀 때 괜히 내 마음도 뜨뜻해지는 그 기분이 좋아서 물건이든 도움이든 자꾸 주고 싶습니다. 거기다 주고받으며 말 한마디 더 건네고 그렇게 누군가를 알아가는 게 또 참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따분한 일상에 늘 외롭게 혼자일 테니까요. 뭔가 주고받을 때면 사투리가 큰 역할을 합니다. 같은 말투를 씀으로써 우리는 같은 지역에서 왔고 일정 부분 같은 경험을 공유해 왔다는 유대감이 생기고, 또 사투리 특유의 친근함과 다정함에 몇 마디 주고받다 보면 금세 무장해제 됩니다.



따스한 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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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작은집 보수에 쓸 옛날 벽지가 떨어져 벽지집에 다녀왔습니다. 아버지께서 미리 전화드렸다고. 예전에 여기서 부모님께서 벽지 사셨는데 혹시 이 벽지 좀 더 구할 수 있냐고 사장님께 여쭤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빠가 자기소개를 단디 해두셨던 덕에 내가 누군지, 어떤 집을 말씀하시고 어떤 벽지인지 대방 아셨습니다.


그리고는 벽지 한 단을 쑥 빼서는 "여 있다. 가 가라" 하며 주셨습니다.


"사장님, 돈 받으셔야죠. 얼마인가요."


"마 됐다, 거 가 가뿌라. 참, 풀은 있나?"



당연히 그냥 줘야 한다는 듯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벽지를 건네주시는 사장님의 모습에 미소가 번집니다.



"사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다음에 올 때는 외국 초콜릿이라도 하나 가져올게요."



씩 웃으시는 사장님의 미소가 참 아름다워 나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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