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193 엄마의 근자감
시트롱 루지랍니다
보랏빛 함박웃음 머금고 있는
시트롱 루지 수국 앞에서
엄마의 발걸음이 멈추십니다
'곱다 예쁘다'
한 송이 꺾어다가 물에 담가 놓으면
금방 뿌리가 내릴 거라고 덧붙이십니다
아니오 아니 되오 어머니~
그냥 두고 눈으로 보시라고
손사래를 치는 내게 흥칫뿡 째려보시는
그녀의 이름은 울 엄마십니다
엄마 엄마~
이 꽃은 이름표도 달고 있어요
수국이라고 다 같은 수국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이름을 가졌는데
이 수국의 이름은
시트롱 루지랍니다
시트롱 루지라는 이름이
어렵고 낯설고 어색하신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시던 울 엄마
시시~하다 마십니다
이름이 무엇이든 그저 한 송이 꺾어
물에 담그고 싶으신 거죠
울 엄마의 근자감 중 하나가
꺾꽂이에 대한 자부심이시거든요
예쁜 꽃가지 하나 툭 꺾어서
물에다 담가 두거나
흙에다 꽂아두거나 하면
스르르 뿌리가 내린다고 은근 자랑이십니다
식물의 가지 줄기 잎 등을 자르거나 꺾어
흙속에 꽂아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꺾꽂이인데
그것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랍니다
손이 야무져야 한다는 거죠
한 줄기 툭 꺾어
무심하게 탁 던지는 순간에도
솜씨라는 게 필요하다는 엄마의 말씀에
슬며시 어깨가 움츠러들며 기가 죽어요
엄마 손은 금손인데
내 손은 꽝손이거든요
시트롱 루지 꽃잎 닮은 고운 빛깔의 옷을
이제는 맘 놓고 입으시는 엄마 모습이 좋아서
금손 아닌 꽝손이라도
그냥 실없이 웃어 봅니다
아버지 돌아가시던 그해 겨울 지나고
봄옷 하나 사시던 엄마가
집었다가 살며시 내려놓으시던
옷 빛깔이 보랏빛이었거든요
고운 보랏빛을 만지작거리다가
보라 대신 흐린 하늘빛 옷을 고르시던
젊디젊은 엄마의 쓸쓸한 표정이
문득 생각나 먹먹해지는 오후
잔뜩 빗물 머금은 하늘빛이
그해 봄 엄마의 옷 빛깔을 닮았습니다
시트롱 루지 수국을 보며
잠시 기억 속을 서성이다가
돌아와 커피 한 잔 씁쓸하게 마시는
흐린 오후의 한 순간이
멜랑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