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201 나무가 나무에게
능소화의 사랑
산에 다녀온 친구가
보송한 뭉게구름 아래
여름날의 초록 나무가
아름답고 당당해 보여 좋았답니다
그렇죠
나무라는 존재가 참 깊고 크고 무성하죠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나무는
소리도 없이 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마음의 친구 같기도 해요
우리 동네 큰 길가 능소화벽에서는
아직 능소화가 덜 피었는데
이웃 아파트 담장 너머
키가 훌쩍 큰 나무를 감아 올라간 능소화가
주홍빛 등불을 켜듯 환하게 피어올라
걸음을 멈추고 사진에 담았습니다
금등화라고 부르기도 하는 능소화는
옛날에는 양반댁 마당에만 심을 수 있어서
양반꽃이라고도 불렀다죠
장마가 시작되고 수국이 한창일 무렵
친구처럼 피어나는 능소화는
명예라는 꽃말을 가졌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저 혼자 꽃잎을 닫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는 꽃이래요
초록으로 무성한 잎사귀 사이에서
해맑은 주홍빛으로 피어나는 능소화는
벽이나 담장을 타고 오르며
밝은 주홍빛 꽃송이를 피워내는데
키 큰 나무를 타고 올라 피어난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나서 한참 바라봅니다
분명 두 그루 나무인데
한 그루 나무로 보입니다
원래 나무 이름이 따로 있을 텐데
능소화 주홍빛 꽃송이들이 매달려 있으니
본래의 이름은 가려지고
능소화나무가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나무가 나무에게'라고
제목을 붙여봅니다
나무가 나무의 손을 잡고
나무가 나무와 어깨동무를 하고
나무가 나무의 등에 업힌 모습이
정겹고 사랑스러워 보였거든요
말없이 피어나 웃음을 주는 한 송이 꽃도
하고픈 말이 가슴 가득 차오르는 순간
저리도 환하고 저토록 곱게
주홍빛 등불이 되어 피어나는 것이죠
말없이 손을 내주고
아낌없이 어깨를 빌려주고
듬직하게 등을 내어주는 한 그루 나무도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들의 소곤거림으로
한 송이 꽃을 안아주고
피어나는 꽃의 아픔을 다독여주고
꽃송이가 시들어 떨어지는 순간까지
친구인 듯 연인인 듯
곁에서 함께 해 줄 거라 생각하니
내 마음까지 든든합니다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안아줄 한 송이 꽃 같은 누군가 곁에 있다면
그래서 나무 이름은 슬며시 잊히고
꽃나무 이름으로 바뀐다 해도
아쉽거나 아깝지 않을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주며
나무가 나무에게 다정한 위로가 되는 순간
곱고 다정하고 아름다운
만남과 인연의 향기 그윽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