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291 지난 것들은 그립다
커피 친구 밤과자
나 어릴 적에는 밤과자라고 했었죠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 오시던
올망졸망 사랑스러운 생과자들 중에서도
밤과자는 달콤하고 부드러워서 좋았어요
일본어를 잊지 않으신 엄마는
구리볼이라고도 불렀는데
밤이 일본어로 구리~니까
어쩌면 일본에서 건너온
과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짤주머니에 모양 깍지를 끼우고 반죽을 넣어
조가비 모양으로 짜서 만드는 밤과자는
백앙금으로 만드는 부드러운 구움 과자인데 구리볼이라고 하기도 하고
앙금 쿠키라고도 한답니다
촉촉하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추억의 맛 밤과자는
마카롱의 레트로 버전인 셈인데
요즘은 상투과자라고 부르기도 하죠
어쩌다 상투과자가 되었을까요?
상투 모양이라기보다는
예쁜 물결무늬 조가비를 닮은
밤과자를 가만 들여다보니
'상투가 국수버섯 솟듯'이라는
재미난 속담이 생각납니다
상투가 더부룩하게 솟아올라
국수버섯 모양으로 우뚝해 보여서
의기양양하여 지나치게 우쭐한 모습을
비유하는 속담인데요
상대를 만만하게 보고 기어오르는 행동을
상투 위에 올라앉는다고 하고
누군가를 제 맘대로 쥐락펴락 하는 것을
상투를 잡아 휘두른다고 하죠
상투과자가 우쭐해 보이기는 해도
넘치거나 지나쳐 보이지는 않고
기어오르는 행동을 할 것 같지도 않고
누군가를 쥐락펴락할 것 같지도 않아요
가지런한 물결무늬가 오히려
단정히 빗어 넘긴 바람결처럼
곱고 차분한 모습입니다
어쨌거나 나에게는 어릴 적 추억의 과자
추억의 잔물결이 조가비처럼 웃는 밤과자는
예전에는 팥앙금으로 만들었지만
요즘은 아몬드 가루나 단호박 가루도 들어가고
계핏가루를 넣어 계피향 톡톡 내기도 한다죠
녹차가루나 백년초 가루 등을 넣어
레인보우 밤과자를 만들기도 해서
보는 멋도 먹는 맛도 훨씬 다채롭답니다
같은 과자 다른 이름
어차피 같은 과자라 해도
상투과자보다는 밤과자가 좋아요
밤과자라고 부르면 아버지 생각이
구리볼이라 부르면 엄마 생각이 나거든요
지나간 모든 것은 그리워요
과자든 사람이든 지난 모든 것들은
그리움으로 잔잔히 물결 지는 것이므로
커피 친구로 추억의 밤과자를 초대합니다
씁쓸한 커피 한 모금에 쌉싸름 추억 한 모금
보드라운 밤과자 한 알에 애틋한 추억도 한 알
개운하고 달콤하고 애잔한 그리움 속으로
바람인 듯 잠시 스며들기에 좋은
향기로운 가을의 초입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