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290 식빵의 추억
커피 친구 식빵
나 어릴 적 부자 고모네 집에 가면
식탁 위에 우아하게 올라앉아 있던
한 봉지 식빵이 있었어요
기다란 봉지에 네모난 식빵이
손마디 하나 두께로 썰어져
가지런히 조신하게 담겨 있었는데
보들보들 새하얀 빵의 속살에
겉껍집은 보송보송
갈색으로 고소했었죠
토스터에서 바삭하게 구워져
톡 튀어나온 식빵에 버터와 딸기잼을 발라
파사삭 소리 나게 먹어도 좋았지만
버터를 팬에 녹여 달걀물 적신 식빵을
노릇노릇 부쳐 우유와 함께 먹어도
보드랍고 고소하고 촉촉한 맛이
참 기분 좋고 든든하고 뿌듯했어요
이제는 큼직한 식빵이 부담스럽고
우유와 식빵은 너무 기본이라 재미없고
토스터에 구워내면 무성의해 보이고
프렌치토스트는 번거로워요
금방 구워져 나와 따뜻하고
폭신하고 두툼한 모습으로
식빵 써는 기계에 들어가기를 기다리며
나란히 줄을 서 있는 식빵을 하나 사서
손으로 한 줌 무심히 뜯어
결을 내 먹는 빵맛이 기막히죠
따뜻한 식빵 한 줌에 커피 한 잔이면
식빵을 좋아하던 동생 생각이 나서
가끔은 눈가에 또르르 추억이 맺히기도 하지만
인간세상 소풍의 고단함 훌훌 벗어던지고
하늘 소풍의 즐거움으로
활짝 웃고 있으리라 생각하면
눈가에 오히려 개운함이 맺힙니다
커피 한 잔은 때로
그리운 추억을 몰아오기도 하고
씁쓸한 추억을 데려오기도 하지만
가끔은 개운한 미소를 건네주기도 해요
달콤한 행운 한 잔은 아니더라도
다행 한 잔은 되어주니
참 정겹고 고마운 한 잔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