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05 사랑스러운 슬픔이여 안녕
영화 '궁'
친구님들이랑 고궁의 뜨락을 거닐며
유유자적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던 날들이
문득 그립습니다
고궁 나들이가 어려우니
영화로 황궁 나들이를 합니다
가을볕 촤라락 쏟아지는 고궁 대신
새하얀 눈꽃송이 포르르 날리고
무지갯빛 나비들이 꿈결처럼 날아드는
황궁 나들이를 해 봅니다
청나라 강희제 시절
어린 궁녀로 들어가 자매처럼 자란
침향(주동우)과 유리(조려영)의
슬픈 사랑 이야기랍니다
그래도 먼 시간을 돌고 돌아
해피엔딩이니 다행이죠
사랑스러운 악역을 거침없이 해 내는
앳된 조려영도 야무지게 예쁘지만
주동우의 어딘지 빈 듯한 매력에
한 걸음 더 깊이 빠져듭니다
'소년 시절의 너'에서
무한 매력으로 눈물 떨구던 그녀가
'궁녀 시절의 너'에서도
사랑스러운 슬픔으로 눈부십니다
투명한 슬픔을 간직한
주동우의 사랑스러음이 돋보이고
황궁이라는 배경의 아름다움도
아련하게 눈길을 끌어요
영화는 어린 소녀들이 무리를 지어
궁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주동우 닮은 어린 주동우는
아파도 참는 것에 익숙한
착한 소녀 침향입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황궁 안을 줄줄이 걸어가는
어린 궁녀들의 모습이 왠지 안쓰러운데요
침향은 어머니가 준 귀고리 한 짝을 찾으러
연희궁의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섰다가
살짝 열린 문틈으로 누군가의 눈과 마주칩니다
13 황자가 새장 속 검은 새 떼와 함께 나오며 연희궁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죠
선배 궁녀에게 괴롭힘 당하는 침향을
구해주는 유리와 자매 같은 친구가 되고
꼬맹이 궁녀들은 점점 자라며
키도 크고 예뻐집니다
물론 마음에 간직한 꿈도 달라져요
신분 상승의 기회를 노리며
황자와 맺어지기를 꿈꾸는
유리(조려영)는 부질없는 발돋움을 하고
청소하다가 13 황자 윤상의 초상화 앞에서
첫눈에 푹 빠져든 침향(주동우)은
혼자 몰래 사랑을 간직하다가
드디어 그림으로만 보던 13 황자를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됩니다
새내기 어린 궁녀 침향이
열린 문틈 사이로 눈 맞춤을 했던
바로 그 순간의 설렘이 떠오릅니다
상서방 당직을 바꿔달라며
들키면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라는
유리의 부탁을 침향은 뿌리치지 못하는데
9 황자가 지나는 어화원 길목을 지키다가
일부러 물을 쏟은 유리는 9 황자와 인연을 맺지만
바로 다음날 배신을 당하고 버림을 받아요
유리 대신 당직을 서던 침향은
한 마리 나비를 쫓아가다가
13 황자의 죽은 어머니 처소였던 연희궁에서
마음에 품고 있던 13 황자를 만납니다
그날이 돌아가신 어머니 생신이라
나비가 되어 와 주실지도 모른다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13 황자를 위해
바닥에 꿀로 글씨를 쓰자
무지갯빛 나비 떼가 모여들어요
반딧불이처럼 고운 빛으로 날아오르는
나비 떼 장면이 곱고 사랑스럽습니다
13 황자와 침향의 사랑이
그대로 이루어지면 좋았을 텐데
침향의 자리를 유리가 가로챕니다
어머니와 함께 지낸 어린 시절을 추억하던
13 황자가 침향의 얼굴을 보려 하자
침향은 달아나고 얼굴을 가린
손수건만 남아 있어요
신데렐라가 구두를 흘리고 가듯이
침향이 흘리고 간 손수건을 주워 들고
13 황자는 금붕어와 모란이 수 놓인
손수건의 주인을 찾기 시작합니다
유리가 자신의 손수건이라 밝히고
침향을 수발 궁녀로 데려가는데
자신의 인연이 아니라고 마음을 접는
침향의 눈물이 안쓰러워요
손수건은 유리의 것이지만
그 궁녀는 나라고 왜 말하지 않은 걸까요
유리가 궁중 법도를 배우느라 가시밭길 걷는 동안
13 황자는 침향을 불러 맛난 것을 건네며
유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물어보고
침향을 유리 삼아 연애놀이 연습을 하죠
비록 유리의 대역이지만
알콩달콩 달달한 시간을 보내며
행복하게 웃는 침향의 모습이
슬픔으로 눈부셔요
유리를 버린 나쁜 남자 9 황자는
권력을 잡기 위해 계략을 꾸며
유리를 이용하고 유리는 유리대로
침향을 13 황자에게서 떨어뜨리기 위해
천진난만했던 그때가 그립다며
침향의 착함을 이용합니다
눈꽃 흩날리는 길에서 13 황자를 기다리던
침향이 여자들은 이런 거 좋아한다며
13 황자를 안아주고 달아나는 모습이
애틋하고 안타깝고 애처로워요
9 황자의 모략으로
13 황자는 반역죄로 눈이 먼 채
종인부에 갇히게 됩니다
유리가 침향에게 13 황자를 만나려면
불타는 숯불 위를 맨발로 지나가라 하자
맨발로 불꽃 위를 걷는 고통을 참고
13 황자를 찾아가는 침향의 걸음걸음이
아프고 쓰라립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13 황자가 유리냐고 묻자
'나비가 가버렸으나 내년에 다시 올 거'라고
엉뚱한 대답을 하는 침향을
유리라고 생각하며 끌어안으며
눈은 곧 괜찮아질 테니 매일 와달라고
다시 눈이 보일 때 맨 먼저 널 보고 싶다는
안타까운 고백을 건네는 13 황자는
대체 왜 침향을 알아보지 못하는 걸까요?
침향을 여전히 유리로 아는
13 황자의 곁을 떠나지 않고
침향은 한결같이 지켜줍니다
황위를 향한 황자들의 암투가
강희제의 죽음으로 마무리되고
13 황자를 아끼는 4 황자가 황제가 되어
13 황자는 누명을 벗고 풀려나게 되죠
미안하다 몰라봐서~
침향을 유리인 줄 오해하던 13 황자가
모든 오해를 풀고 침향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은 풍등을 하늘 높이 띄워요
'미안해요 나를 용서한다면
어화원에서 만납시다'
그러나 침향은 어화원에 가지 못하고
13 황자의 행복을 위해 한 걸음 물러섭니다
황제가 된 4 황자가 13 황자의 미래를 위해
침향에게 물러나 주기를 바랐거든요
궁에서 나가기 전에 침향은 마지막으로
13 황자와의 추억이 깃든 종인부에 들러요
그녀가 오리라는 걸 알았을까요?
눈을 가린 채 어둠 속에서
침향을 기다리고 있는 13 황자는
비로소 침향을 만납니다
만날 사람들은 만나게 되는 거죠
운명이 두 사람의 손을 잡아주며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침향의 사랑스러운 슬픔이여 안녕~
주동우와 조려영
두 배우의 앳된 모습과
안타깝게 엇갈리는 사랑 이야기
그리고 황궁의 눈꽃 풍경에서 빠져나오니
창밖은 눈부신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