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55 어느 날 문을 열면
보고 싶은 너
어느 날 문득 문을 열면
문밖에 그대가 서 있을 것만 같아요
그리운 너도 노란 은행잎 하나로
보고 싶은 그대도 붉은 단풍잎 하나토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송이송이 들꽃으로
배시시 웃음 머금고 나풀나풀 손 흔들며
금방이라도 내 눈 안으로 들어오려고
서 있고 앉아 있고 서성거리다가
다정한 걸음을 바삐 내디딜 것 같아요
올망졸망 비슷하면서도
크기도 모양도 빛깔도 다르고
눈빛과 표정까지도 제각각인
감귤을 한 바구니 앞에 두고
껍질 벗겨 새콤달콤한 과즙에 취하듯
그리운 너와 보고 싶은 그대들과
서로의 향기에 취하고 싶은
붉고 노란 가을날입니다
반갑다는 말이 필요할까요
오랜만이라는 인사도 웃음으로 대신하고
보고 싶었다는 간절함도 손짓으로 건네며
그동안의 인연에 감사하는 눈웃음과
햇살보다 더 눈부시게 쏟아지는
그 마음 한 잎이면 충분한 거죠
여리디 여린 봄날 새 순이다가
순하고 곱고 싱그러운 새 잎이다가
무성한 초록 이파리로 물들어
진하고 향기로운 그늘 드리우며
서로를 다정히 보듬어주기도 하면서
계절의 빛으로 곱게 젖어들어 물들어가는
아름답고 귀한 인연의 향기에
꿈결인 듯 잠시 스며들면 되는 거죠
빛깔도 저마다 조금씩 다르고
향기도 비슷한 듯 똑같지 않고
단맛과 새콤함의 깊이도 서로 다른
새콤 달콤 부드러운 감귤들처럼
너와 나 그리고 그대와의 인연도
그런 거 아닐까요
감귤들이 가을 닮은 주홍으로 곱게 무르익으며
단맛과 신맛이 적당히 어우러지는 동안
햇살과 바람과 빗줄기가 걸음마다
한결같이 다정하지는 않았을 테죠
가끔은 세차게 때로는 쌀쌀맞게
걸음걸음 사연을 안고 스쳐 지나갔을 테죠
인연이라는 열매가
노랗게 익어가는 동안
우리 모두 알알이 감귤들처럼
이런저런 사연의 햇살과 바람과 빗방울에
시달리고 견디고 버티면서
꽃길 아닌 오르막길 가파르게 오르다가
아슬아슬 비탈길을
숨 가쁘게 내려오고 있으니까요
계절의 바람에 흩날리는 단풍잎이 되고
노랑노랑 빛깔 고운 은행잎도 되고
들판에서 저 혼자 예뻐지는 들꽃도 되는
곱고도 아릿하고 가슴 저린 순간순간들을
여기서 또 저기서 약속도 없이
함께 하는 마음이 모여드는 자리가
인연의 꽃자리인 거죠
무심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문득 그리울 때 문을 열면 바로 거기
웃으며 서 있을 것 같은 너
어깨 위에 바람 한 잎 얹고 다가설 그대
세상 모든 인연은 지금 이 순간
매정한 가을바람 품에 안은 가랑잎처럼
문밖을 서성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쓸쓸함이 깊은 만큼
아름다운 이 가을날처럼
그리움의 깊이만큼
더 귀하고 고운 것이 인연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