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ring Dec 15. 2022

초록의 시간 533 겨울을 외치다

세상의 중심에서

도봉산 아래 친구가 사는 동네에는

지금 함박눈이 내린답니다

해님이 기웃기웃 슬며시 나오다 말다

잠시 헷갈리는 모양이라는데요

울 동네는 눈가루 폴폴 흩날리다 말고

해님이 비죽 고개 내밀까 말까

고민하는 하늘이 묵직한 잿빛입니다


이런 날은 카페라떼가 어울린다 싶어

집 앞 카페에서 사 온 라떼 한 잔을 앞에 두고

키가 그리 크지 않으나 커피에 진심이라

키다리 커피 청년이 만든

커피잔 속 눈사람 사진봅니다


눈사람이라기보다는 하얀 장군 눈사람 같아서

눈사람 장군님~이라고 불러보다가

혼자 중얼거립니다

귀엽고 듬직한 눈사람 장군님이

커피잔의 중심에서

겨울을 외치다~


그렇습니다

12월의 한복판 커피잔의 중심에는

사랑스러운 눈사람 장군님이 있고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어요

물론 내 세상의 중심일 뿐

온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는 건 아니지만~


비록 좁다란 나만의 세상이라도

오붓한 내 세상의 나는 가여운 만큼

예쁘고 귀하고 사랑스러워요

매우 부실하고 무척이나 부족해서

한 그루 연약한 나무를 닮았으나

그래도 반듯하게 버티고 서서

햇살을 반기고 바람을 피하지 않으며

빗줄기눈송이와도 친구하고

내 안에 깃드는 새소리에

가만 귀를 기울일 줄 아니까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라는

일본 영화가 문득 생각납니다

한참 오래전에 본 영화라

내용은 선명하지 않으나

절빅함만은 손에 잡힐 듯 느껴져서

기억은 사라져도 느낌이나 감정은

고스란히 살아남는다는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간절하게 사랑을 외치는 영화도 있고

내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부여안고 사는

연약한 내가 있듯이 커피잔의 중심에서

겨울을 외치는 하얀 눈사람 장군님있으니

다채롭고 흥미롭고 재미난 세상인 거죠


우유 거품 퐁퐁 금방 사라지더라도

순간만큼은 참 늠름하고 당당하고

사랑스러운 눈사람 장군님과 함께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립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겨울을 외치다

겨울 한복판에서

나를 외치다~


나지막이 외치듯 중얼거리는 순간

바보에게는 바보만의 복이 있다는 말이

문득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작가의 이전글 초록의 시간 532 몽글몽글 비엔나커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