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458 커피나무야 미안해

한 잔의 커피가 좋아서

by eunring

커피나무야 미안해

진초록 잎 무성하게 키가 훌쩍 자란 네가

새하얀 꽃을 여기저기 피워내는 것을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뜬금없이 가지치기를 해 주었지


가지치기를 해 주어야

꽃 피고 진 자리에 알알이

열매가 맺힐 거라고 생각했거든

키가 크느라 버거울까 봐

내 손으로 도와주려고 그랬던 건데

내 마음이 너무 조급했던 걸까

부질없는 욕심이 앞섰던 건지도 몰라


가지치기를 해 주면

키로 자랄 에너지를 안으로 모아

또로록 커피 열매가 맺힐 거라는

물색없고 철없는 내 생각이 부끄럽다


성큼 솟아오른 가지를 자르고 보니

아뿔싸~ 또랑한 커피 콩이 한 알

이미 초록으로 맺혀 있었던 거야

귀한 꿈이 담긴 한 알의 우주를 매단

그 자랑스러운 나뭇가지를

내 손으로 그만 잘라내 버린 거였어

꽃이 피었다 진 자리에 맺힌 열매

작지만 야무지고 귀한 커피나무의 꿈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커피나무야 미안해

그냥 두고 바라볼 걸 그랬어

키가 크면 크는 대로 그냥 둘 걸 그랬어

새하얀 꽃이 피면 피는 대로

꽃이 시들어 떨어지면 지는 대로

서두르지 말고 바라볼 걸 그랬어


초록으로 무성해지는

윤기 나는 잎사귀만으로도

고맙고 기쁘고 흐뭇했는데

그러다 새하얀 꽃들이 피어나

절로 웃음이 맺혔는데

꽃 피니 빨강 열매까지 얻고 싶어

내 마음이 문득 조급해진 거야


커피나무야 미안해

더 바라지 않을게

더 기다리지 않을게

너무 욕심부리지 않을게

지금 그대로 아끼고 사랑할게


사랑은 그런 거니까

너무 서두르면 안 되는 거니까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충분하니까

내 마음을 채우기 위해 안달을 하는 것은

진심 사랑이 아닌 거니까


다만 한 잔의 위로가 되어 주는 커피가 좋아서

케냐의 커피농장에 가보고 싶었으나

대신 커피나무 화분 하나 베란다에 놓았고

무성한 초록잎이 좋아서 바라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새하얀 꽃이 피어났으니

그것으로 이미 충분해


커피나무야 미안해

네가 온 힘을 다해 맺었을

커피콩 한 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초록 열매가 빨강으로 익을 때까지

고요히 기다려 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리고 고마워

초록빛 한 알의 위로도 거저 오지 않고

이렇듯 애잔한 아쉬움을 안고 온다는 걸

알게 해 주어 진심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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