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476 거리에 꽃등이 피어나면

그리움의 등불 하나

by eunring

거리에 꽃등이 피어나면

마음에는 그리움의 등불 하나

고요히 떠올라요


온화한 미소 머금고

자비의 큰 걸음으로 오시는

부처님의 뒤를 따르며

마음공부를 하는 친구님들의 얼굴이

꽃등불처럼 동그랗게 떠오릅니다

수연성 안락화 여민선 향수화...


꽃등이 매달려 하늘거리는 길가에는

능소화 잎사귀들도 연초록으로 피어나

주홍 꽃등불 같은 꽃들이 피어날

여름날을 생각하니 마음이 환해집니다


밝고 환한 주홍빛 능소화가 피어나도

엄마가 좋아하시는 화사한 능소화벽길을

기운이 빠져 더는 함께 하지 못하실

연로하신 엄마가 안쓰럽고

이제는 엄마 손 놓고 나 홀로 타박타박

걸어야 한다는 것이 문득 쓸쓸합니다


먼저 하늘 여행을 떠나간

오히려 언니 같았던 동생의 생일이 다가와

이제는 어린 소녀의 마음으로 나풀대시는

엄마의 눈빛을 가만가만 살피게 됩니다


부처님의 생일 초를 밝히듯이

거리에 꽃등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동생의 생일도 함께 다가온다고 설레던

그 시간들이 새삼 그립습니다


머리에 이고 진 인생의 묵직함과

가슴에 묻은 슬픔과 그리움을

비우고 내려놓으면 새털처럼 가벼워지고

한 송이 고운 꽃등처럼 자유로이

바람에 나부낄 수 있을까요


먼저 간 자식을 가슴에 묻은 엄마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짙푸른 설움을 생각하다가

부처님 오신 날을 기쁨으로 밝히는

꽃등 물결 따라 이 세상에 다녀간

동생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이제는 생일 대신 기일을 챙기게 된

동생과의 추억들을 가만가만 더듬어보다가

나란히 부처님의 길을 따라 걷지는 않아도

마음으로 함께 하는 친구님들을 떠올리며

마음의 연꽃 한 송이 피워봅니다


아직은 능소화의 계절이 아니지만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을 안고

능소화벽길을 따라 늘어선 꽃등이

슬픔으로 나부끼는 고운 날들입니다


능소화 피어날 무렵

꽃등은 이미 사라지고 없겠지만

어느 연못에선가 고요히

연꽃들이 사이좋게 피어나겠죠


사랑으로 한 송이

그리움으로 또 한 송이

송이송이 자매들처럼 우애롭게

연꽃송이 피어날 날을 기다립니다


내 동생 잘 지내지?

나도 잘 지내고 있어

너는 거기서 나는 여기서

우리 함께 잘 지내자


언젠가 다시 활짝 웃으며

기쁨으로 만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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