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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Jun 10. 2023

초록의 시간 574 어느 날 문득

커피콩의 변신

그렇습니다

커피콩의 변신은

당연히 무죄입니다


희망이라는 모자를 쓰고

초록 줄기 연한 빛으로

흙을 뚫고 올라온

커피콩이 기특해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봅니다


우리 집 커피나무 한 그루

화분이 버겁도록 쑥쑥 자라서

하얀 꽃 피고 초록 열매 맺히더니

붉은 루비처럼 사랑스럽게 영글어

하얀 꽃의 순수한 기쁨도 주고

초록 열매의 반가움도 주고

빨강 열매의 보람도 주었어요


빨갛게 물든 커피콩 한 줌

조심스럽게 거두어 창가에 두고

눈부신 햇살 머금고 반짝이는 것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화분에 심으면 싹이 날까

고개 갸웃거리기만 했는데요


어느 날 문득

커피나무에 물을 주다가

커피콩 껍데기를 모자처럼 눌러쓰고

손가락 길이만큼 자라난

아기 커피나무를 만났습니다


한 그루 커피나무를 화분에 두고 볼 뿐

커피나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므로

싹이라고 해야 할지

순이라고 해야 할지

줄기라고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아기나무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살뜰히 살펴주지도 않았는데

나무에 맺혀 붉게 익은 커피콩들이

저 혼자 뚝뚝 화분 흙에 떨어져

저 혼자 물을 먹고 꿈틀대며

저 혼자 흙을 비집고 돋아올라

여리고 순하게 자라난 모습이

대견하고 기특하고 신기해서

자꾸만 들여다보게 됩니다


좀 더 자라면

조그만 화분에 옮겨 심어야겠어요

커피콩을 모자처럼 이고 있는 모습이

재미나서 자꾸 웃음이 나다가도

소리도 없이 이만큼 자라기 위해

커피콩이 버티고 견디며 끌어안았을

눈물겨운 성장통을 생각하면

마음 짠합니다


아기 커피나무야

너의 순간을 응원할게

너의 하루를 지켜보며

너의 아픔을 쓰담쓰담

너의 자람을 아끼고 사랑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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