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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Jun 25. 2023

초록의 시간 580 빈자리를 보며

걱정을 내려놓아요

굿모닝 커피 한 잔

테이크아웃해 가려고 들른 카페

주말 아침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커피 손님은 나 혼자

텅 비어 고요하고 적막한

빈자리를 둘러보며 생각합니다


사이사이를 비집고 잔잔히 퍼지는

커피 향이 온전히 내 것이라

호젓함이 좋기도 하면서

빈자리 자리마다 내려앉아 소곤대는

어제의 이야기들이 아침 햇살 머금어

더욱 눈부시게 외로운 느낌입니다


비어 있으니 다시 채워지겠죠

누군가 머무르다 떠난 자리에

또 다른 누군가 찾아들고

왁자지껄 함께 한 시간들도

시간의 먼지가 되어 흩어지듯~


아픔이 스치고 지난 자리

수줍은 기쁨도 깃들고

반짝이는 즐거움이 사라지면

아련한 추억과 아쉬움이 남아

머뭇머뭇 제자리를 맴도는 듯~


빈자리는 외로우나

외로운 만큼 수많은 사연들을

포근하게 품고 있네요

차곡차곡 쌓여 머무르던

누군가의 아픔과 눈물

누군가의 고민과 걱정의 흔적들과

누군가의 설렘과 기쁨과 즐거움도

아침 햇살 사이로 흩어져 사라집니다


그래요 우리

빈자리에 부질없는 걱정

툭 내려놓아요

그 옆 빈자리에 슬픔도

툭툭 내려놓아요

그 옆옆 빈자리에 아픔도

살며시 내려놓아요


주섬주섬 일어서는 아픔에게

우리 함께 부탁해 볼까요

아픔아 가려거든

다정히 슬픔과 손잡고 가렴

가는 길 머뭇거리지 말고

씩씩하게  앞장서 가렴


미련 남아 돌아보지도 말고

가다가 문득 아쉬운 듯 걸음 멈추지 말고

안타까운 얼굴로 뒤돌아보지도 말고

새삼스럽게 되짚어보지도 말고

되돌아오지는 더욱 말고

묵묵히 가던 길 그대로 가주렴


그리고 사랑스러운 기쁨에게도

한마디 건네기로 해요

기쁨아 갈 때 가더라도

내 곁에 머무르는 동안

반짝이는 얼굴로 눈부시게

꽃처럼 웃어 주렴


떠날 때 떠나더라도

서두르지 말고 쉬엄쉬엄 가렴

가지 말라고 옷소매 부여잡지는 않을게

매정하게 떨쳐내듯 달아나지 말고

사뿐사뿐 아씨 걸음으로 가다가

문득 뒤돌아 작별의 미소도 건네고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남겨 주렴


채워지면 비워지고

비워지면 다시 채워지는 것을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으니

시간이 주는 지혜는

비싼 만큼 귀하고 소중합니다

넘어지면 주저앉을 줄 알고

힘들 땐 비켜가는 법을 알게 되었으니

지난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아요


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나와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던

초록 카페가 떠난 자리

연두 빵집이 들어선답니다


한동안 허무하게 비어 있다가

마침내 두터운 가림막이 드리워지고

안에서 쿵쾅거리며 공사 중이더니

갑갑한 가림막 걷어내자

맑은 창유리 드러나고

새 간판도 얼굴을 드러냅니다


그렇게 떠난 자리 새로움이 들어서고

지난 것에 대한 아쉬움 걷어내며

다가올 시간을 향한 설렘과 떨림

빈자리를 기웃거리다가 덥석 주저앉아

반가운 미소를 건네는

그것이

인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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