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632 조금 부족합니다만
그런대로 괜찮아요
선물 받은 신발이 예쁘긴 한데
안타깝게도 조금 작아서
뒤꿈치를 구겨 신고 있다는
동생을 보고는 피식 웃습니다
어쩌다 보니
나 역시 좀 작은 치수의 실내화를
뒤꿈치 구겨 신고 있으니까요
내 쪼매난 실내화는
선물 받은 건 아니고
치수를 살짝 잘못 선택해서
발에 맞지 않게 조금 작은 게 왔는데
초록빛이 예뻐서 그냥 신고 있어요
신발은 무조건 발에 맞고 편해야 하는데
선물 받은 거라 아까워 집 근처에서
잠깐씩 구겨 신고 있다는 동생이나
초록이 좋아서 구겨 신고 있는 내가
신발처럼 살짝 모자라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 들며 생각은 드는데
철이 안 드니
그것이 문제인 거죠
그림 형제의 동화
'신데렐라'가 생각납니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억지로 신으려는데
엄지발가락이 안 들어가니 엄지를 자르고
뒤꿈치가 안 들어가니 뒤꿈치를 자르는
신데렐라의 두 언니가 생각나서
피식 웃고 맙니다
재투성이 신데렐라
그런 동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반짝이는 유리구두 신고 꼭 만나고 싶은
꽃미남 왕자님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자매는 어딘가 통하는 게 있나 봐요
취향도 비슷해서 서로 각자 주문했는데
거의 닮은꼴 옷을 입고 나타나
거울이라도 본 듯 멋쩍게 웃곤 하다가
서로의 동선을 피해 가며 입거나
마음에 들어서 꼭 입고 싶으면
빛깔이 다른 걸 고르거나 하는데
하다 하다 신발까지 구겨 신다니
유전자의 힘은 참 대단합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조금 부족하고 많이 부실합니다만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칠렐레 팔렐레 넘치는 것보다는
조금 모자란 것이 나으니까요
작고 예쁜 꽃들은 시들어도
더 작고 덜 못생겨지니 다행이고
어리고 고운 단풍잎들도 발아래 나부낄 때
발레 하는 안나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우니
앙증맞게 작아서 더 소중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신발은
역시나 불편합니다
아무리 귀한 선물이고
제아무리 예쁜 신발이라도
내 발에 맞지 않으면 불편하니
그림의 떡이고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인 거죠
다음엔 치수 제대로 주문하리라
다짐하지만 그 또한 알 수 없어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아니지만
모양이니 빛깔에 꽂혀
살짝 구겨 신을 생각으로
아뿔싸 또 실수
에라이 몰겠다 하며
주문 버튼 터치하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