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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Nov 29. 2023

초록의 시간 632 조금 부족합니다만

그런대로 괜찮아요

선물 받은 신발이 예쁘긴 한데

안타깝게도 조금 작아서

뒤꿈치를 구겨 신고 있다는 

동생을 보고는 피식 웃습니다


어쩌다 보니

나 역시 좀 작은 치수의 실내화를 

뒤꿈치 구겨 신고 있으니까요

 쪼매난 실내화는

선물 받은 건 아니고

치수를 살짝 잘못 선택해서

발에 맞지 않게 조금 작은 게 왔는데

초록빛이 예뻐서 그냥 신고 있어요


신발은 무조건 발에 맞고 편해야 하는데

선물 받은 거라 아까워 집 근처에서

잠깐씩 구겨 신고 있다는 동생이나

초록이 좋아서 구겨 신고 있는 내가

신발처럼 살짝 모자라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 들며 생각은 드는데

철이 안 드니

그것이 문제인 거죠


그림 형제의 동화

'신데렐라'가 생각납니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억지로 신으려는데

엄지발가락이 안 들어가니 엄지를 자르고

뒤꿈치가 안 들어가니 뒤꿈치를 자르는

신데렐라의 두 언니가 생각나서

피식 웃고 맙니다


재투성이 신데렐라

그런 동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반짝이는 유리구두 신고 꼭 만나고 싶은

꽃미남 왕자님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자매는 어딘가 통하는 게 있나 봐요


취향도 비슷해서 서로 각자 주문했는데

거의 닮은꼴 옷을 입고 나타나

거울이라도 본 듯 멋쩍게 웃곤 하다가

서로의 동선을 피해 가며 입거나

마음에 들어서 꼭 입고 싶으면

빛깔이 다른 걸 고르거나 하는데

하다 하다 신발까지 구겨 신다니

유전자의 힘은 참 대단합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조금 부족하고 많이 부실합니다만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칠렐레 팔렐레 넘치는 것보다는

조금 모자란 것이 나으니까요


작고 예쁜 꽃들은 시들어도

더 작고 덜 못생겨지니 다행이고

어리고 고운 단풍잎들도 발아래 나부낄 때

발레 하는 안나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우니

앙증맞게 작아서 더 소중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신발은

역시나 불편합니다

아무리 귀한 선물이

제아무리 예쁜 신발이라도

내 발에 맞지 않으면 불편하니

그림의 떡이고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인 거죠


다음엔 치수 제대로 주문하리라

다짐하지만 그 또한 알 수 없어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아니지만

모양이니 빛깔에 꽂혀

살짝 구겨 신을 생각으로

아뿔싸 또 실수

에라이 몰겠다 하며

주문 버튼 터치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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