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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Jan 11. 2024

초록의 시간 671 구별한다는 것은

차별과는 다른 거죠

이웃 아파트 놀이터에서

뭉뚝뭉뚝한 눈사람을 만났어요

반듯하게 잘 뭉쳐서 다져진

매끈한 눈사람이 아니라

눈덩이를 뭉뚱그려놓은 것 같은

무뚝뚝하고 어설픈 모습이었는데요


가까이 다가서 보니

아닙니다 적당히가 아니라

제법 섬세하게 만들어져

손맵시가 살아 있어요


얼굴은 하늘을 향해

꿈이라도 꾸는 듯

빙긋 미소를 짓고 있어서

마음이 포근해집니다


여유로이 뒷짐이라도 진 듯

옷에는 단추 모양도 동그랗게 드러나고

발모양도 제법 그럴듯합니다

찬찬히 보니 꿈을 머금은

눈사람 같아요


잘 살펴보고 구별하기도 전에

못생긴 눈사람이라고

섣불리 차별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 사과한다~

눈사람을 향해 중얼거렸습니다


얼마 전 병원 진료 예약이 있어서

기다리는 중 만난 어느 청년이

눈사람의 모습과 겹쳐지며

마음이 짠해집니다


빈 의자에 배낭가방을 내려놓고는

한참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반듯하게 각을 잡는 모습이

한 치의 오차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으로 가득했는데

아마도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것 같았어요


잠시 바라보다가

대놓고 보는 내가 민망해서

시선을 거두었습니다

혹시라도 차별의 마음을

나도 모르게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몹시 미안했거든요


고개를 돌린 사이에

청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의자 위에 차렷 자세로 

반듯하게 남아 있는

가방이 외롭게 눈에 들어와

마음이 애잔했습니다


먼지와 안개를 구별해야 하듯이

구별과 차별을 구분할 줄 아는

차분함을 지녀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미세먼지 자욱한 겨울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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