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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Feb 25. 2024

초록의 시간 703 선을 넘지 말아요

다정도 병이니까요

예쁘다고 자꾸 들여다보며

다정한 햇볕을 더 쬐어주려고

화분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그만 붉은 동백 한 송이를 건드려

떨구고 말았습니다


미안해 미안하다

정말 미안 한 떨기 동백~

곱게 피어나려고 애쓴 보람도 없이

시들어 떨어지는 안타까운 과정도

걸음마다 의미가 있는 것인데

그 길을 제대로 다 걷지 못하고

싱싱한 꽃으로 피어나자마자

손끝으로 뚝 떨어뜨려서

정말 미안하다~


사랑엔 국경도 없다고들 하지만

그러나 사랑도 사랑 나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분명 있는 건데

그 선을 내가 넘고 말았습니다

내 마음은 진심 사랑이었는데

그 사랑이 손끝으로 가서는

지나친 간섭이 되고 만 거죠


허망하고 미안해서

우두커니 한참을 바라보다가

떨어진 꽃 한 송이 흙 위에 얹어두고는

나를 불러 세워 혹시 서운하냐 묻던

얼굴을 새삼스럽게 떠올립니다


무심히 길을 지나가는데

뜬금없이 그 사람이

내게 물었어요

내가 혹시 ~

서운하게 한 거 있어요?라고


이 세상은 무인도가 아니고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서

언제 어디 어느 자리에서나

사람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관계로 얽히고 이어지고 맺어져

때로 생각지 못한 오해가 생기기도 해요


어쩌다 보니

내가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어섰던가 봅니다

한 떨기 동백꽃 가장 예쁠 때

생각 없이 불쑥  내밀어

고운 순간을 떨어뜨리고 만 것처럼

그 사람의 어딘가 약한 마음자리

나도 모르게 상처를 내고 말았나 봐요


아니라고 고개 저으며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으나

찜찜함이 오래 남습니다

그 사람이 내게 서운하냐고 물었던 건

스스로 서운했다는 말이니까요


내 눈빛이나 말 한마디 혹은 손짓 하나

무엇이 그 사람을 서운하게 했을까요

어떤 설명이나 변명으로도

그 서운함을 풀어줄 수 없으리라는

안타까운 생각에

잠시 거리를 두기로 합니다


어설픈 오해였다면

그 오해를 풀 시간이 필요하듯이

마음이 스스로를 가다듬을 수 있게

두어 걸음 물러서는 것도 필요하거든요


가까이에서는 

미처 보이지 않던 것이

멀찌감치 떨어지면

비로소 보이기도 하니까요


나도 묻고 싶습니다

내가 아는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혹시라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서운하게 한 적 있느냐고


그랬으면 정말 미안하다고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마음보다 한 발 앞서 간 눈빛이나

마음과는 달리 주춤거렸던 표정

또는 무심한 내 손끝이 아마도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한 것 같다고

혼잣말 같은 변명을 건네봅니다


다정도 병이라 

한 걸음 더 가까이

물색없이

선을 넘어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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