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초록의 시간 816 미안합니다

거울연못을 지나며

by eunring

거울연못을 지나다가

안내문구 앞에서 걸음을 멈춥니다

포토스폿이랍니다

인생샷을 건지라는 문구까지

친절하고 상냥합니다


거울연못 앞에서

인새샷을 건지는 대신

미안합니다~

갑자기 이 말을 하고 싶어요


철없이 살아온 시간들

겁 없이 지내온 나날들

생각 없이 툭 건넨 말 한마디

쓸데없이 건방지고 오만하거나

이유도 없이 무표정했던 순간들


거울연못을 지나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다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중얼거립니다


민폐라는 말이 있어요

세상에 쓸모 있는 일은 못하더라도

민폐는 끼치지 말고 살자는

그 생각이 얼미나 시건방진 생각인지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말도 댕강 짧아지고

글도 댕강댕강 쨜막해지고

영상은 휘리릭 스쳐 지나듯 짧아져야

좋아라 환영받는 이 시절에

나는 주저리주저리

구구절절 하고픈 말이

왜 이리 많은 걸까요


그래서 미안합니다

말을 더 많이 줄여야겠다고

이왕이면 묵묵히

미소만 살며시 걸치리라고

생각하고 또 다짐합니다


그 생각이 무디어질 때마다

다시 거울연못 앞에 서리라고

이미 내놓은 말들을 모조리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으니

터져나오고 싶어 안달하는 말들만이라도

부지런히 가지치기를 하리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몇 걸음 걷다가

다시 되돌아서게 되더라도

걸음은 여유롭고 반듯하게

마음은 새털처럼 가벼이

생각은 삐뚤빼뚤 자유분방하더라도

함부로 오지랖 떨며

내비치지는 않으리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봅니다


그래도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들 수도 있으니

말수는 짧고 간단하게 줄이더라도

미안하다는 말은 늘 곁에 두리라고

스스로에게 약속합니다


미소학원에 다녀오지는 않았어도

입가에 미소 하나 꽃처럼 피우고

미안학원에 다녀온 사람처럼

미안하다는 마디는

아끼지 않으리라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초록의 시간 815 멀지 않은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