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816 미안합니다
거울연못을 지나며
거울연못을 지나다가
안내문구 앞에서 걸음을 멈춥니다
포토스폿이랍니다
인생샷을 건지라는 문구까지
친절하고 상냥합니다
거울연못 앞에서
인새샷을 건지는 대신
미안합니다~
갑자기 이 말을 하고 싶어요
철없이 살아온 시간들
겁 없이 지내온 나날들
생각 없이 툭 건넨 말 한마디
쓸데없이 건방지고 오만하거나
이유도 없이 무표정했던 순간들
거울연못을 지나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다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중얼거립니다
민폐라는 말이 있어요
세상에 쓸모 있는 일은 못하더라도
민폐는 끼치지 말고 살자는
그 생각이 얼미나 시건방진 생각인지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말도 댕강 짧아지고
글도 댕강댕강 쨜막해지고
영상은 휘리릭 스쳐 지나듯 짧아져야
좋아라 환영받는 이 시절에
나는 주저리주저리
구구절절 하고픈 말이
왜 이리 많은 걸까요
그래서 미안합니다
말을 더 많이 줄여야겠다고
이왕이면 묵묵히
미소만 살며시 걸치리라고
생각하고 또 다짐합니다
그 생각이 무디어질 때마다
다시 거울연못 앞에 서리라고
이미 내놓은 말들을 모조리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으니
터져나오고 싶어 안달하는 말들만이라도
부지런히 가지치기를 하리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몇 걸음 걷다가
다시 되돌아서게 되더라도
걸음은 여유롭고 반듯하게
마음은 새털처럼 가벼이
생각은 삐뚤빼뚤 자유분방하더라도
함부로 오지랖 떨며
내비치지는 않으리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봅니다
그래도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들 수도 있으니
말수는 짧고 간단하게 줄이더라도
미안하다는 말은 늘 곁에 두리라고
스스로에게 약속합니다
미소학원에 다녀오지는 않았어도
입가에 미소 하나 꽃처럼 피우고
미안학원에 다녀온 사람처럼
미안하다는 한 마디는
아끼지 않으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