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851 까칠이 아이스캔디
불안이와 까칠이
어릴 적 울 아부지가
한여름이면 자주 사 주시던
달콤 시원한 단팥 아이스캔디를
여름 다 지나 가을에 접어들어서야
한 입 먹으니 시원 단맛 끝에
쓸쓸 가을이 묻어납니다
올여름 보내기 전에
사 먹으리라 생각했으나
유난히 덥고 습한 날씨에
찬 것을 조심하며 지내다 보니
먹지도 못하고 여름이 가 버렸어요
단팥 아이스캔디 사 주시던
아부지가 곁에 안 계시니
사 달라고 조르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내돈내산~
후드득 내리는 가을비에
더위가 뒷걸음질 치고 있으나
아이스캔디가 계절 음식도 아니니
계절 따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버지가 사 주시던 팥 아이스캔디와
내가 좋아하는 멜론 아이스캔디를
사이좋게 내돈내산~
그런데요
내가 좋아하는
보라와 초록입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재미나게 포장된
일곱 가지 아이스캔디 중에서
팥은 보라 불안이
멜론은 초록 까칠이인데요
불안할 필요 없이
믿고 먹는 팥맛이라니
울 아부지가 어린 내게 건네시던
달콤 추억의 맛으로 잘 어울립니다
내가 좋아하는
초록 펠론 아이스캔디는
나를 닮이 까칠이래요
세상 까칠한 그 누구라도
달콤함에 스르르 녹는 맛이라는데
게다가 초록이라니 더 정겹습니다
보라와 초록이 둘 중에
팥 아이스캔디를 먼저 집어듭니다
그리운 아버지를 생각하며
내가 울 아부지인 셈 치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팥 아이스캔디를 먼저 먹기로 합니다
손 닿지 않는 먼곳에 계시는
아버지에게 처음 사드리는
팥 아이스캔디는
알알이 통단팥이 달콤하게 씹히는
어릴 적 추억의 맛입니다
그렇군요 울 아부지는
내가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언제든 내게로 오십니다
아버지 대신 아버지를 위한
팥 아이스캔디를 먹으며
나는 딸이면서 또한
나의 아버지도 되어 봅니다
나머지 아이스캔디들도
저마다 재미난 이름과
빛깔과 스토리를 갖고 있어요
부럽이 요거트는 깨끗하고 깔끔해서
누구나 부러워해서 부럽이래요
초코는 버럭이인데
더위에 지쳐 버럭이라나요
정말 지난여름은
버럭 소리 절로 날 만큼 더웠어요
밀크는 슬픔이인데요
슬픔을 달래주는
부드럽고 달콤한 위로의 우유 맛이고
달콤 시원 딸기는 당황이랍니다
너무 맛있어서 당황할 거라나요
그리고 샤인머스킷은 기쁨이
올여름 가장 기쁜 순간을 만들어줄
상큼한 맛이라는데
이미 여름은 지나가 버렸으니
가을을 기쁨으로 물들이면 되는 거죠
다음엔 샤인머스킷으로 먹어야겠어요
여름은 이미 저물고 가을비 촉촉
가을비 우산 속에서
상큼한 기쁨을 느껴볼래요
기쁨은 상큼 달콤한 거지만
저절로 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