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끄트머리에서
찬비가 스치듯 내리고
겨울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첫눈도 내릴락 말락한 얼굴로
바람의 숨소리 휘감으며
겨울이 오고 있어요
그렇군요
저무는 계절의 끝에
다음 계절이 기다리듯이
모든 시작과 끝은 하나인 거죠
종점과 기점은
일직선상에 그려진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뭇잎새들 우수수 떨어진 자리에
시린 하늘이 들어서 있으니
비우며 채우고 또 비워가는 게
계절이고 세월이고
인생입니다
소리도 없이 어디선가
스르르 밀려오는 겨울은
쫌 나를 닮은 듯~
앞으로 나서거나 나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구석자리나 맨 뒷자리에 앉아
살며시 찌그러져 숨기 좋아하는
조용하고 적막한 계절입니다
상냥한 봄은
종종걸음으로 살랑이며 배시시
열정의 여름은 한바탕 소나기처럼
소란스럽게 톡톡 후드득
옷자락 여미는 가을은
바스락 파스락 우수수
그러나 겨울은 그저 묵묵히
말수 적은 아이가
제자리걸음이라도 하듯이
고요히 머무르는 계절입니다
봄으로부터 시작해서
겨울로 마감하는 걸까요
겨울부터 시작하여
새봄의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는 걸까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기점은 바로 종점이 되고
종점 또힌 기점이 되는 것이니
모든 계절은 돌고 돌아 제자리
시작이고 또 마무리이고
다시 시작인 거죠
종점을 향해 가는 가을이 아쉬우나
기점에서 기다리는 하얀 겨울
또한 반갑습니다
이번 겨울이 유난히 설레고
기다려지는 이유가 하나 있어요
겨울의 기점에서 봄돌 친구와 함께
스페인어를 배우기로 했거든요
성지순례를 자주 다니는 친구는
전부터 스페인어에 관심이 많았고
스페인어 배워 스페인에 가면
더 재미날 거라고 합니다
여성형 명사와 남성형 명사가 있어
까다롭고 좀 번거롭다지만
스페인어를 배우다 보면
언젠가 스페인 여행도 가게 되리라는
작고도 벅찬 꿈을 꾸어가며
친구와 함께 다시 소녀가 되고
학생이 된 듯 들뜬 마음으로
설렘의 겨울을 기다립니다
올라~!!
더듬더듬 스페인어 배워
스페인에 가면 좋고
아님 말고~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 흘러내리듯
스르르 다 빠져나간다 해도
그래도 인사말 정도는
어리바리 흉내 낼 수 있을 테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