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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시간 923 겨울 사랑

겨울나무에게

by eunring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친구의 말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라고 답합니다


길 건너 학교 운동장

하얀 눈밭 위에 휘늘어진

겨울나무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나무

겨울 사랑이라고 중얼거립니다


햇빛이 있으니

그림자가 생겨나고

그림자가 늘어진 덕분에

겨울나무 빈 가지들이

한결 여유로운 표정입니다


늘 잎새들에게 양보했었죠

봄이면 비죽 돋아나는 새 순에게

따사로운 햇살을 모아주고

여름이면 무성한 잎사귀에 가려

품고 싶은 바람도 놓아 보냈어요


가을이면 곱게 물든 단풍잎들에게

사랑스러운 눈길을 내어주느라

나뭇가지들은 늘 머뭇머뭇

한걸음 뒤에 머무를 수밖에~


고단함이 없으면 휴식도 없는 거죠

나뭇잎 다 떨구고 휑한 그림자 드리운

겨울나무가 한가로이 햇살과 노닐고

스치는 바람과도 인사 나누는 모습이

넉넉하고 편안해 보입니다


금빛 햇살 한가득 맘껏 끌어안고

시리도록 찬 바람도 와락 품에 안으며

비바람과 눈보라도 불평 없이 견디는

한 그루 겨울나무는

그림자까지도 의연하고

진심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다 버리고

미련 없이 떨구어

가진 것이라고는 그림자뿐

스치는 바람소리에도

파르르 떨고 있는 겨울나무에게

춥지 않으냐 물어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사랑이고 인생이라고 답하듯

그림자 속 잔가지가 나부끼며

흔드는 손끝에서 반짝 빛나는

햇살이 눈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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