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친구의 말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라고 답합니다
길 건너 학교 운동장
하얀 눈밭 위에 휘늘어진
겨울나무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나무
겨울 사랑이라고 중얼거립니다
햇빛이 있으니
그림자가 생겨나고
그림자가 늘어진 덕분에
겨울나무 빈 가지들이
한결 여유로운 표정입니다
늘 잎새들에게 양보했었죠
봄이면 비죽 돋아나는 새 순에게
따사로운 햇살을 모아주고
여름이면 무성한 잎사귀에 가려
품고 싶은 바람도 놓아 보냈어요
가을이면 곱게 물든 단풍잎들에게
사랑스러운 눈길을 내어주느라
나뭇가지들은 늘 머뭇머뭇
한걸음 뒤에 머무를 수밖에~
고단함이 없으면 휴식도 없는 거죠
나뭇잎 다 떨구고 휑한 그림자 드리운
겨울나무가 한가로이 햇살과 노닐고
스치는 바람과도 인사 나누는 모습이
넉넉하고 편안해 보입니다
금빛 햇살 한가득 맘껏 끌어안고
시리도록 찬 바람도 와락 품에 안으며
비바람과 눈보라도 불평 없이 견디는
한 그루 겨울나무는
그림자까지도 의연하고
진심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다 버리고
미련 없이 떨구어
가진 것이라고는 그림자뿐
스치는 바람소리에도
파르르 떨고 있는 겨울나무에게
춥지 않으냐 물어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사랑이고 인생이라고 답하듯
그림자 속 잔가지가 나부끼며
흔드는 손끝에서 반짝 빛나는
햇살이 눈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