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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시간 937 무지개 여신

거품에서 거품으로

by eunring

너는 너

나는 나라고 선을 그으면

너무 무정한가요


어제는 어제

오늘은 오늘 그리고

내일은 내일이라고 선을 그으면

너무 매정한가요


서로에게 묶여 부대끼기보다는

적당히 선을 지키는 보송 관계이기를

시간과 세월에 얽매이기보다는

적당히 잊고 지우고 끊어내며

홀가분해지기를 바라면서도

그러다가 때로는 문득

그리워지는 얼굴들이 있어요


지금은 뜸해진

무지개 모임이 있었거든요

인생이 일곱 빛깔 무지개가 아니어서

모임 이름이라도 고운 무지개면 좋겠다고

서로의 얼굴 마주 보며 웃곤 했죠


화가가 아니라서

르누아르처럼 무지개 팔레트라는

별명도 감히 넘볼 수 없고

통 큰 대인배가 아니어서

이만하면 행복한 인생이라며

하하호호 웃어넘길 수도 없으니

무지개 닮은 이들과 노닐다 보면

무지개 여신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기도 했었죠


그러나 모든 만남이

무한반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아요

물거품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도 아닌데

인생이 물거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지금은 꽃샘바람 가득한

봄날입니다


'호메로스'에 그려진

아프로디테의 모습은 이러해요


'나는 아름답고 정숙한

아프로디테를 노래하려 하네

황금수관을 머리에 쓰고 바다로 둘러싸인

키프로스 도성을 지배하는 여신을~


여신은 서풍의 부푼 입김에 떠밀려

물살 거친 파도에 실려

부드러운 거품을 타고 왔다네

황금머리띠를 두른 계절의 여신들이

아프로디테를 기쁘게 맞이하며

그녀의 몸을 신성한 옷으로 감싸고

신성한 이마 위에 황금관을 씌웠네'


그렇군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도

부드러운 거품을 타고 오고

커피잔 속 고운 하트도

우유 거품에서 피어나고

인생의 기쁨과 슬픔도

거품에서 거품으로

왔다가 스러지며 사라지는 것임을

고개 끄덕이며 새삼 되새겨보는

지금은 꽃샘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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