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 다녀갔답니다
비 소식이 있어 창밖을 내다보니
지나는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있어요
올봄은 유난히 촉촉 비도 자주자주
찬바람도 아무 때나 제 맘대로 다녀가며
옷자락과 머리카락을 마구 흐트러놓아
쌀쌀하고 서늘한 봄으로 느껴집니다
하루 종일 비 그림이 이어져
쓸쓸함 깊어지는 오늘 같은 날은
치직치직 치지직 빗소리 닮은
고소하고 바삭한 부침개 부쳐 먹으며
친구들과 까르르 웃다가 도란도란
첫사랑 이야기가 딱인데요
명랑 환자가 얼마 전
전망 좋은 병실에서 만난
첫사랑 소녀 이야기라도
살짜기 해 드릴까요
철부지 명랑 환자가
첫사랑 소녀 환자라고 이름 붙인
그녀를 간병하는 아주머니는
조용하고 차분하고
손끝 야무진 분이어서
커튼 사이로 내비치는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얌전히 놓여 있었어요
잘 드셔야 빨리 낫는다는
간병 아주머니의 말씀 끝에
가끔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로는
도무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는데
병동 휴게실에 앉아 있는 그녀는
깔끔 단정한 똑 단발에
표정까지도 야무진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왜 첫사랑 소녀인지
궁금하다면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우연히 복도에서 만난 간병 아주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살며시 건넨
첫사랑 소식 때문이었거든요
병동 복도에서 만난
간병 아주머니가
어제저녁 그녀의 첫사랑이
문병을 다녀갔다며 배시시 웃어요
말수가 적은 아주머니도
그 얘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는지
일부러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던 같아서
함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커피와 빵을 잔뜩 사들고
첫사랑이 문병을 다녀갔다니
안타깝지만 그는 이미
그녀의 곁에 머무르지 않는
헤어진 사람인 거죠
첫사랑 그녀가 휴게실에 앉아
새초롬 창밖을 내다보던 얼굴이
비에 젖는 목련송이처럼 보이던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어요
첫사랑이 다녀간 자리
두 사람의 애틋 사연은
쌉싸름하고도 향기로운
커피 향으로 남았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