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요정
영영아 알고 있니?
영영이네 정원 구석구석에는
영영이 엄마 푸른별꽃님의 눈길과
손길과 발자국들이 곱게 남아 있단다
하얀꽃님이 영영이의 손을 잡은 채
그리움 가득한 눈빛으로
영영이네 정원을 찬찬히 둘러보며
느리게 말을 잇습니다
그동안 영영이도 보고 싶고
영영이 아삐 소식도 궁금해서
몇 번이나 문 앞까지 왔다가도
선뜻 문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어
잠시 서성이다가 돌아서는
발걸음이 한없이 묵직하고
머뭇대는 마음은 깊이 쓸쓸했지
꽃들이 줄지어 피어나는
영영이네 정원 어디에도
언니 같고 동생 같던
내 친구 푸른별꽃님
영영이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고 믿고 싶지 않아서
문 앞에서 그냥 돌아서곤 했단다
내게도 상실감이 깊고 컸으니까
영영아 너 아니?
영영이 엄마 푸른별꽃님이
어스름 해가 질 무렵이면
달님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던 의자가 있어
그 빨강 나무의자도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지
사랑의 기쁨 의자라고
영영이 엄마 푸른별꽃님이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그 의자가 아직 있는지 모르겠다
참 재미난 건 말이야
영영이 엄마 푸른별꽃님은
별빛보다 달빛을 더 좋아했단다
까만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빛은
너무 멀고 왠지 소란스럽고 차가우면서도
뾰족하니 따가운 느낌이 든다고 했어
그래서 달빛의 고요함과 은은함과
부드러움을 더 좋아했던 걸까
영영이 엄마 푸른별꽃님이
사랑의 기쁨 의자에 앉아서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적막하고 애잔해 보여서
애틋한 사랑의 슬픔이 느껴졌어
민들레 홀씨도 아니면서
휘리릭 바람을 타고 왔다가
바람결에 흔적도 없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
영영이 엄마 그리고 내 친구
푸른별꽃님~
영영이가 낮달맞이꽃이라면
푸른별꽃님은 달맞이꽃이야
영영이가 저녁에 피는
애기달맞이꽃이 아니어서 난 좋아
달맞이꽃처럼 달님을 기다리는
내 친구 푸른별꽃님에게는
몽환적인 밤의 요정이 어울리지만
사랑스러운 영영이에게는
눈부신 사랑의 기쁨이 어울리거든
해질 무렵 피었다가
다음날 해가 뜨면 시드는
달맞이꽃의 꽃말은 밤의 요정이란다
기다림이고 소원이고 마법이기도 한데
이렇게 사랑스러운 영영이에게는
낮달맞이꽃이 가진
사랑의 기쁨이 더 어울리지
우리 전래동화에
해님 달님 이야기가 있듯이
그리스 신화에는 요정들의 이야기가 있어
별과 달을 사랑하는 요정들이 있었는데
유난히 달을 사랑하는 요정이 있었대
반짝 별빛에 은은 달빛이
슬며시 가려지는 게 안타까워
별들이 사라지면 달빛이 더 빛날 텐데~
중얼거리는 요정의 혼잣말을
제우스 신이 그만 듣고 만 거야
제우스 신이 생각하기에
참 맹랑한 요정이었거든
괘씸한 마음에
달을 좋아하는 그 요정을
달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리 쫓아내 버렸대
달의 신이 요정을 찾으려 했으나
제우스 신의 방해로 만나지 못하고
요정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찾아
안타까운 눈물을 흘렸다는
쓸쓸한 얘기지
그렇게 끝나면
너무 슬프다는 영영이의 밀에
하얀꽃님이 곱게 웃으며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렇지 그렇게 끝나면
너무 슬프고 안타깝지
달님을 사랑한 요정에게도
요정을 찾고 싶었던 달의 신에게도
너무 비극적인 결말이어서
제우스 신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요정을 달맞이꽃으로 피어나게 했대
참 다행이지
달님을 기다리며 피어나는
달맞이꽃이 되었으니~
정말 다행이라고
영영이도 따라서 중얼거립니다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정말 정말 다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