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쁨 의자
아빠 빨강 나무의자 주세요
엄마가 앉아 있었다는
사랑의 기쁨 의자~
영영이가 다짜고짜
눈먼 이에게 손을 내밉니다
삼색버드나무 그늘 아래
엄마의 빨강 의자가 놓여 있었다고
하얀꽃님 이모가 알려 주셨어요
해질 무렵이면 거기 앉아
한 송이 달맞이꽃처럼
달님을 마중했다면서요
영영이의 말에
눈먼 이는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수만 가지 생각의 그림자들이
눈먼 이의 얼굴을
구름처럼 스치고 지나갑니다
하얗고 보송한 솜구름이기도 하고
어둡고 묵직한 비구름이기도 합니다
영영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눈먼 이가 말합니다
지난 기억들을 더듬는
나직한 목소리에 하나둘
추억이 맺힙니다
영영아~
아빠 어릴 적에
할머니가 이른 봄이면
달맞이꽃 어린싹으로 나물을 해 주셨지
데쳐서 찬물에 우려내지 않으면
매운맛이 알싸하다고 하셨단다
갓 핀 꽃으로는 튀김도 해 주셨어
노란 꽃튀김이 예쁘기도 해서
웃음이 절로 나는
특별한 맛이었단다
아빠도 참~
갑자기 달맞이꽃순나물에
달맞이꽃튀김 얘기가 뭐예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영영이가 묻습니다
아하 글쿤요~
아빠도 할머니가 그리운 거죠?
내가 엄마를 기다리듯이
아빠도 할머니를 기다리는 거죠?
아니라고 눈먼 이가
천천히 고개를 내젓습니다
아빠의 엄마 그러니까
영영이의 할머니는
오래전에 하늘여행을 떠나셔서
우리 곁에 다시 오시지 않아
하지만 늘 아빠 안에 계시지
곁에 계시지 않을 뿐
바로 여기 아빠의 마음 안에
늘 함께 하신단다
그리고 영영아~
빨강 나무의자는 장난감이 아니야
그 의자는 엄마 의자라서
조그만 영영이에게는 맞지도 않아
영영이 다리가 땅에 닿지 않아서
불편하게 대롱거릴 텐데~
괜찮다고 영영이가
고집을 부립니다
그래도 빨강 의자 주세요
삼색버드나무 그늘에 놓아주세요
다리가 땅에 닿지 않아 대롱거려도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날 거라고
종아리가 그네를 타는 것처럼
신날 거라고~
우리 영영이가 또
때죽나무 하얀 꽃이 되었네~
영영이가 고집을 부리며
고개를 푹 수그리고 울먹일 때면
때죽나무꽃 영영이라고
눈먼 이는 웃곤 합니다
때죽나무 하얀꽃은
작고 예쁜 종처럼 생긴 별꽃이야
영영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거든
고개 숙이고 하얗게 피어나는
송이송이 꽃송이가
폴폴 날리다가 초록 잎에
살포시 내려앉으면 눈꽃 같아서
애틋하게 예쁜 꽃이지
고집쟁이 우리 영영이
때죽나무 하얀 꽃처럼 예쁜
우리 영영이 키에 맞게
작고 예쁘고 야무진 의자를 만들어줄게
영영이가 좋아하는 핑크 색으로
쨍하니 빛나는 핫핑크 의자로
사랑스럽게 만들어 주마~
고마워요 아빠~
영영이가 고개를 들어
아빠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습니다
아빠가 만들어 주신
예쁘고 편안한 핑크 의자에 앉아서
엄마를 기다릴게요
엄마가 빨강의자에 앉아
달님을 기다렸듯이~
그래~
눈먼 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중에 엄마가 돌아오면
엄마의 빨강 나무의자랑
영영이의 핑크 나무의자
두 개를 나란히 놓아줄게
그때도 엄마는 달님을 기다릴까
그리고 우리 영영이는 엄마 대신
무얼 기다리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