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519 꽃보다 항아리

사랑 가득 항아리

by eunring

사랑 친구님이 묵주 기도길에 얻어온

주님의 들꽃과 함초를 항아리에 꽂았답니다

가을바람 스치듯 고즈넉하니 예쁘네요

꽃보다 항아리에 눈이 가고

조르르 마음도 따라갑니다


우리 집 어딘가에도

저 항아리 하나 꽁꽁 숨겨져 있습니다

할머니의 항아리였는데요

주먹만 한 꼬맹이 항아리부터

어린 내 두 팔 안에 들어올 만한 크기까지

여러 개의 항아리를 할머니가 아끼셨습니다


고소한 깨소금 항아리부터

설탕 항아리나 꽃소금 항아리까지

할머니는 나란히 부엌에 놓아두고

온갖 양념 항아리로 쓰시거나

마루 뒤주 위에 조신하게 올려두고

철마다 피어나는 꽃들을 꽂기도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항아리에는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나

향기로운 꽃내음이 가득했었죠

어린 내 눈에 할머니의 항아리는

귀하고 사랑스러운 보물단지였는데요


매일같이 닦고 어루만져

반짝반짝 윤이 나는 할머니의 항아리는

어딘가에 깊숙이 숨겨둔 보물이 아니라

바로 곁에 두고 아끼는

일상의 보물단지였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 속

할머니의 항아리에는

요란하지 않은 사랑이 담기고

소란스럽지 않은 정성도 가득했죠


우리 인생의 진짜 보물은

바로 우리 곁에 있고

꽁꽁 감추고 숨겨두는 게 아니라

함께 하며 귀하게 여기는 것임을

할머니의 항아리에서 배웠습니다


주먹만 한 항아리 하나

할머니를 추억하며 간직해 두었지만

할머니처럼 늘 곁에 두고

아끼며 쓰지는 못합니다

보일 듯 말 듯 금이 갔거든요


그래도 가끔은 꺼내서

보드라운 면수건으로 닦아

따뜻한 가을 햇살이랑

다정한 바람소리를 담아봐야겠어요


사랑은 햇살 아래 드러낼 때

더욱 눈부시게 빛나고

바람결에 자유로이 풀어지고 흐트러지며

향기 폴폴 나풀대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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