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659 아름다운 이별의 시작

영화 '선생님과 길고양이'

by eunring

삶은 영원하지 않다

만났다 헤어지고 태어나고 죽어간다

슬픔에 물들고 그 슬픔에 묻어가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슬픔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은퇴 후 소일거리로 번역을 해 보며

외롭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까칠 대마왕 교장선생님에게도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러블리 고양이 미가 가끔 들른다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

정겨운 골목에서

교장선생님에게는 미

미장원에서는 타마코

외로운 소녀에게는 치히로

교장선생님의 제자 마유미에게는 솔라

동네 사람 절반이 밥을 주고

기다리고 예뻐하는 길고양이는

부르는 사람마다

부르는 이름이 제각기 다르다


아침이면 쫀쫀한 걸음으로

동네 빵집에서 크루아상을 사들고 오는

은퇴한 교장선생님은

버터가 바뀌자마자 맛이 달라짐을 아는

예민하고 까칠한 츤데레 할아버지다

밖에서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걷지만

혼자일 때는 어깨도 허리도 구부정한

외로운 할아버지


아내의 영정사진 앞에 마지막 크루아상을 건네고

빵집 폐업 소식에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오자

아내가 생전에 미라고 부르던 길고양이가

집안에 무단침입하여 대략 난감


고양이를 사랑하고 보살피며 밥을 주던

아내가 떠올라 마음이 아픈 교장 선생님은

길고양이를 매정하게 쫓아내고

그날 이후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


동네방네 구석구석 고양이를 찾아다니며

고개도 숙이고 망가지기 시작하는

엄근진 교장선생님의

여리고 따스한 속마음이 애처롭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지만 치매 할머니를 위해 고양이를 키우려고 하는 청년 쇼고

고양이 밥을 주던 시간이 자신에게도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마유미

마음 따뜻한 오지라퍼 미장원 아주머니


마을 사람들과 함께

미 타마코 치히로 솔라

고양이 찾는 전단지를 만들고

전단지를 붙이기 위해 고개도 숙이고

철공소 아저씨에게 꾸지람도 들어가며

까칠 대마왕에서 고양이 바보로 진화하는

교장선생님의 모습이 웃프다


전봇대에 올라갔다가 파출소에 잡혀가기도 하고

고양이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는

외로운 소녀도 만나는데

길고양이 이름을 부르며 찾다가

지쳐 쓰러져 누운

흙투성이 교장선생님이 올려다보는

밤하늘 가득한 별들의 반짝임이

무척이나 적막해 보인다


좀 더 잘해 줄 걸 그랬다며

자신에게 화가 난다는 교장선생님은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떠난

죽은 아내가 생각나고

추억이 되살아나서

고양이에게 못되게 굴었다고 고백한다


고양이는 쫓아다니면 안 되고

가만히 앉아서 계속 기다리는 거라고

인내가 관건이라

교장선생님은 잘하실 거라는

미장원 아주머니의 말이 따뜻하고 고맙다


마을 사람들과 고양이 찾는 일을

내일 계속하기로 하고

헤어진 교장선생님은

길고양이처럼 떠돌고 있는

꼬맹이 소년을 데려다주는데

소년이 왜 길고양이를 찾느냐고 묻자

소중한 고양이라고 대답한다


그 고양이가 살아있냐고 또 묻자

모른다고 대답하며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은 죽는다고

남겨진 이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물소리 바람소리

별들이 반짝이는 소리를 안고

교장선생님은 집으로 돌아와

홀로 어둠 속에서 고개 숙여 운다

수그린 뒷모습이 소리도 없이 울고 있다


그 순간 옆구리 쪽이 환해지며

고양이가 왔다는 아내의 밝은 목소리가 들리고

빛이 환해지는 쪽으로 다가가는 교장선생님은

밝은 뜨락에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생전의 아내를 만나 다정한 추억을 나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것은

인생의 즐거움 하나를 놓치는 거라는

아내의 말에 교장선생님은

고양이가 어차피 죽는다고 말하고

우리도 죽는다고 아내는 말한다


활짝 웃는 아내의 모습과

수그린 교장선생님의 뒷모습으로

아름다운 이별이 비로소 시작되면서

영화는 슬프고도 따뜻하게 마무리


삶은 영원하지 않고

우리 모두 언젠가는 헤어진다

헤어지고 난 후 애달파하는 건

온전히 남은 사람들의 몫이지만

참고 견디는 것도 인생이다

슬픔은 묻어지는 것이 아니니

슬픔에 묻어가는 수밖에 없다


후회와 회한도 삶이고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닐까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있을 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중에 찾아다니며 울지 말고

지금 잘하는 수밖에 없다

나중은 없는 것이니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를 위로하다 658 가을 정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