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718 모자 사랑

자매들의 뷰티살롱 28

by eunring

각이 진 옷이 불편하듯이

날이 선 모자도 불편합니다

모자 쓴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머리 손질에 서툰 데다가

부지런한 편도 아니어서

쓱 눌러쓰면 편하고 머리도 가려지는

헐거운 니트 모자를 애용합니다


잘 모르는 이들은

손으로 직접 뜬 거냐고 물어요

잔머리는 좀 굴리는 편이지만

바느질이나 뜨개질 요리 청소 등

손으로 하는 일은 영 젬병이라서

돈 주고 샀다고 대답할 때마다

살짝 민망하긴 합니다


여름내 베이지색 모자를 쓰다가

찬바람 불자 회색 모자로 바꿨더니

엄마가 볼 때마다 모자가 어둡다고

버릇처럼 타박이십니다


그럴 때마다 다음에~라고 피하곤 하죠

이왕 썼으니 오늘은 그냥 쓰고

다음을 기약하지만

다음에도 나는 여전히

검정이나 회색 모자를 쓸 겁니다

엄마 앞에서는 덜 어두운

회색 모자로 쓸 거고요


외출하실 때마다

모자가 뷰티 아이템인

엄마의 포근한 겨울을 위해

센스쟁이 막내 아네스가

주홍빛 모자를 준비했답니다

모자가 바뀌니 옷도 그에 맞춰야 한다며

눈썰미 있는 그라시아가 깔맞춤으로

오렌지 계통의 패딩을 입혀드렸죠


그런데요

새 모자가 예쁘긴 한데 안타깝게도

엄마 머리에 좀 커서 눈이 가려집니다

안 그래도 눈이 작으신 편인데

모자가 눈을 가리니 곤란하게 되었죠


모자 크기는 보통인데

엄마 머리가 작아서 아쉽게 되었습니다

새 모자 대신 헌 모자를 쓰신

엄마 표정이 새초롬해지십니다

새 모자를 자랑하고 싶으셨을 텐데요


엄마에게는 모자가 사계절 필수지만

차가운 겨울철에는 더욱 필요한 아이템입니다

손발이 시리면 모자를 쓰라는

서양 속담도 있거든요


모자 이야기를 하다 보니

B 612 별에 사는 어린 왕자가 생각납니다

모자인 줄 알았는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란 어린 왕자는

한눈에 알아보았죠


그냥 양 그림은 탐탁지 않다면서도

작은 구멍이 있는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보이지 않는 양 그림을 좋다고 한

어린 왕자의 순수한 눈빛이

문득 떠오릅니다


찬바람을 막아줄 따뜻한 모자를 쓰고

어린 왕자와 함께 해 지는 풍경을

보러 가고 싶어요


'나는 해지는 풍경이 좋아

우리 해지는 걸 구경하러 가'

해지는 풍경을 좋아해서

어느 날엔가 하루에 마흔세 번씩이나

해지는 풍경을 봤다는 어린 왕자


해가 지는 걸 보려면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어린 왕자의 금발에는

어떤 모자가 어울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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