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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Jul 16. 2022

그림, 절망에서 희망을 꽃피우다

아동 노동_헤들리, 드레이퍼


아이가 길 위에서 잠들었다. 몇 살쯤 되는 아이일까? 네 살? 다섯 살? 오른팔에 신문을 끼고, 손에도 신문을 들고 있다. 신문팔이 아이다. 왼손은 주머니 속에 있다. 여린 고사리 손이 시렸던 걸까? 아니면 신문을 팔고 받은 돈을 잃어버릴까 잠결에서도 꼭 쥐고 있는 걸까? 가정 안에서 보살핌을 받아야 할 어린아이가 길 위에서 신문을 팔며 하루벌이를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는 아이의 삶이 고단하다. 구멍 난 무릎, 낡은 신발... 배고프고 춥다. 하지만 잠든 아이의 얼굴은 잠시나마 평온하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이 아이를 보면서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가 생각났다. "성냥 사세요~" 소녀의 목소리에 신문팔이 소년의 가냘픈 외침이 겹친다. "신문이요, 신문"


Ralph Hedley_The News Boy (1878)


늘 우중충하고 흐린 영국의 하늘, 하지만 오랜만에 따사로운 햇살이 인사를 건넨다. 아이의 발치와 앉은자리에 그림자가 선명한 것으로 보아 오늘은 분명 화창하다. 아이는 볕이 좋은 자리에 앉아 잠시 고단함을 내려놓고 쉬다가 얼굴을 간지럽히는 햇살에 부신 눈을 감는다는 것이 깜박 잠이 들었을 것이다. 아이의 발그레한 뺨처럼 단 잠 이기를, 햇살처럼 밝고 따스한 꿈을 꾸기를, 오늘 팔아야 할 몫의 신문을 다 팔고 신나서 집으로 뛰어가기를 바란다. 현실은 차갑지만, 잠든 아이의 평온한 표정처럼 오늘 이 햇살의 따스함이, 아이의 가슴속에서 두고두고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아래 그림도 영국 화가의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꽃을 파는 소녀다.


Herbert James Draper_The Golden Rays (1880)


성당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꽃을 팔고 있는 것 같다. 오른손에는 꽃이 담긴 바구니를, 왼손에는 사람들에게 샘플로 보여 줄 작은 꽃을 들고 있다. 성전 안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에 빛이 들어찬다. 그림의 제목처럼 환상적이며 신비로운 황금빛 줄기에 소녀는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너무나 황홀한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작은 꽃 한 송이가 발치에 떨어진 줄도 모른 채 말이다.


종교는, 신앙은 신을 위한 것일까? 우리를 위한 것일까? 그것은 무엇을 위해 존재한다는 범주를 넘어선 영역일까? 그 심오한 진리를 알 수는 없지만 어쩐지 신께서는 우리에게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하시지는 않을까? 자녀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처럼 창조물의 행복이 창조주의 뜻일 거라 생각하는 건 너무나 인간적인 발상일까? 그저 거리에서 꽃을 팔고 있는 아이였다면 생각이 이다지도 복잡하지 않았을 테지만, 성당에서 제대 앞에 바칠 꽃을 팔며 황홀한 빛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를 마주하니 여러 가지 마음이 든다.


서로 사랑하여라... 그냥 '사랑하여라'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여라'다. 밝은 빛처럼 아이의 앞날에 하늘의 은총과 더불어 이웃과 사회의 보살핌이 있기를 기도해 본다. 이 아이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나의 마음처럼, 화가 또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꽃이 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또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닐까?


 [헤들리/드레이퍼] 그림 출처 : Museo del Prad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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