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라고 착각했던 것들을 버렸다.
회사 엘리베이터에서였다. 거울 속 양복 입은 남자를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저게 내가 아니라는 걸.
그래서 버렸다. 차근차근.
먼저 명함을 버렸다. 부장이라는 직함이 찍힌 명함을 휴지통에 넣었다. 이상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오래된 영수증을 버리는 것처럼.
그다음은 핸드폰이었다. 액정에 떠 있는 부재중 전화 스무 통. 읽지 않은 메시지 서른두 통. 전부 다 버렸다. 통째로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다.
집에 도착해서는 옷을 벗었다. 양복, 넥타이, 구두. 전부 버렸다. 아내가 놀라서 물었다.
"당신 미쳤어?"
"아니. 처음으로 제정신이 든 것 같아."
거울 앞에 섰다. 이제 나는 무엇일까.
이름? 그것도 버렸다. 누군가가 붙여준 것일 뿐이니까.
나이? 그것도 버렸다. 시간이 만들어낸 숫자일 뿐이니까.
기억? 그것도 버렸다. 지나간 환영일 뿐이니까.
하나씩 버릴 때마다 가벼워졌다. 마치 오랫동안 메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는 것처럼.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사라지지 않았다.
모든 것을 버렸는데도, 무언가가 남아있었다.
버리는 행위를 지켜보는 무언가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는 무언가가.
그게 진짜 나였다.
오늘도 회사에 간다. 엘리베이터를 탄다. 거울 속에 양복 입은 남자가 보인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저건 그저 영화일 뿐이라는 걸.
스크린 위에 떠다니는 빛일 뿐이라는 걸.
진짜 나는 저 뒤에 있다.
영사기 불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고요하게.
평온하게.
영화를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는 힐난한다.
"넌 이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될 수 있지."
퇴근길이다.
오늘의 상영도 끝나간다.
하지만 진짜 나는 여전히 여기 있다.
텅 빈 극장에서
고요히
내가 아닌 것들을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