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약국이 문을 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 노트 한 페이지에서 발견했다.
새로 산 노트의 첫 장을 펼쳤는데,
거기에 작은 약국이 하나 생겼다.
"아픔을 글자로 바꿔드립니다"
희미한 잉크 자국으로 쓰여 있었다.
그 아래 더 옅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시련은 결국 당신의 서사를 풍부하게 만듭니다'
마침 아팠다.
등골이 휘어질 정도로 무거운 마음을 안고 있었다.
퇴사 통보를 받은 지 한 달.
통장 잔고는 바닥이 보이고
자존감은 이미 바닥을 뚫었다.
손가락으로 글자를 만졌다.
그러자 잉크가 살아나듯 선명해졌다.
문이 열렸다.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가 물었다.
"어디가 아프신가요?"
"마음이요."
"언제부터요?"
"한 달 전부터요."
"처방전 갖고 오셨나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여자는 낡은 가죽 표지의 노트를 꺼냈다.
페이지마다 구겨진 자국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이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
"여기 써보세요."
"뭘요?"
"아픈 걸요. 모조리 다요."
"다요?"
"네. 언젠가 더 힘든 순간이 올 텐데, 그때를 위한 연습이에요."
만년필을 건네받았다.
잉크병에서 막 채워온 듯 묵직했다.
펜촉이 종이에 닿는 순간
잉크가 천천히 스며들었다.
마치 눈물처럼.
처음엔 망설여졌다.
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삐뚤빼뚤한 글씨들.
감춰둔 마음처럼 비뚤어진 글자들.
'더 이상 내 자리가 아니래.'
잉크가 번졌다.
'이제 뭘 하지.'
글자가 떨렸다.
'이런 내가 싫어.'
종이가 눅눅해졌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젖어든 글자들이
천천히 약이 되어갔다.
'더 이상 내 자리가 아니래'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비타민이 되어
페이지 위에서 반짝였다.
'이제 뭘 하지'는
가능성이라는 항생제로 바뀌어
종이를 따뜻하게 데웠다.
'이런 내가 싫어'는
꿈이란 진통제가 되어
잉크향을 남겼다.
여자가 말했다.
"고통을 종이 위에 토해내는 게 무서우신가요?"
"아니요. 이상하게 두렵지 않아요."
"왜죠?"
"제가...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거든요."
"어떻게요?"
"이렇게요."
내 손이 노트 위에서 춤추듯 움직였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이 있다.
그가 쓴 책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었다.
나도 할 수 있다.
이 고통을 위대한 무언가로 바꿀 수 있다.'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시네요."
"뭘요?"
"당신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를요."
한 달이 지났다.
노트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벼워졌다.
잉크가 젖어드는 만큼
아픔은 옅어졌다.
오늘도 나는 노트를 편다.
아플 때마다.
무너질 것 같을 때마다.
만년필을 들고
고통을 글자로 바꾼다.
그리고 지켜본다.
아픔이 잉크가 되고
잉크가 약이 되고
약이 힘이 되는 것을.
이제 나는 두렵지 않다.
내가 고통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임을 알기에.
언젠가 정말 힘든 순간이 온대도
나는 고통을 종이 위에 모조리 토해내고
다시 일어날 것이다.
시련은 결국 나의 서사를 풍부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 고통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미소 지었다.
잉크 자국 아래로
새로운 이야기가 숨 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