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른거림으로 나를 안아주겠지"
비몽사몽 사이, 영수증 위에 적어 놓은 이 문장을 아침에 발견했다. 내가 썼지만 왜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이상하게 마음을 울리는 문장. 한참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요즘 푹 빠져있는 '거침없이 하이킥'
'문희의 봄' 에피소드의 한 장면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봄바람 나서 놀러 다니던 문희 할머니를 못마땅해하는 순재 할아버지.
다 늙어서 주책이라는 할아버지의 타박에 할머니는 서럽게 말했다.
"그래 다 늙어서 그랬어 다 늙어서... 다 늙어서 앞으로 놀 날이 얼마 없을 것 같아서 사지 멀쩡할 때 놀라 그랬어 왜! 내 인생에 봄이 몇 번이나 올 것 같애? 몇 번이나 올지 당신은 알어? 난 몰라... 당신이나 나나 언제 어떻게 될지 아냐고! 봄 바람 날 날이 얼마 없을 것 같아서 원 없이 한 번 실컷 놀아 보고 싶어서 그랬어! 왜 그래 왜...!"
이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떴다.
다음날, 그는 무심한 듯 돈 봉투를 할머니에게 건넸다. 봉투 안에는 쪽지가 들어 있었다.
"당신 말대로 몇번이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꽃노리. 아주 실컷해봐 원없이!"
이 장면에서 묘하게 마음이 찡했다. 할아버지의 그 투박한 표현 방식이, 오히려 더 깊은 사랑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직설적인 "사랑해"라는 말 대신 무뚝뚝하게 돈 봉투를 건네는 것.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할아버지의 사랑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어렴풋함', 그러니까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흐릿한 기척이다. 할아버지의 사랑은 정확히 그런 모습이었다. 직접적인 말이나 스킨십으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그 무심한 듯한 돈 봉투와 쪽지에 할머니를 향한 깊은 이해와 배려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둘째는 '어른됨', 하지만 이는 완벽한 성숙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어른은 서툴고 투박하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아이와 달리, 어른은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데 서툴다. 할아버지는 "사랑해"라는 간단한 말 대신 돈 봉투와 짧은 쪽지를 건넸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 두 의미가 만날 때, '어른거림'은 더욱 깊은 의미를 갖는다. 서툴고 투박한 어른의 사랑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은은하게 표현되는 상태. 완벽하지 않은 표현 방식의 아름다움이 그 안에 있다.
가끔은 이런 '어른거림'의 사랑이 화려한 말보다 더 진실되게 느껴진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해도, 행동으로 완벽하게 보여주지 못해도, 그 마음이 어른거리며 상대에게 닿는 순간의 따뜻함. 그리고 그 서툰 표현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깊은 진심을 발견한다.
"그 어른거림으로 나를 안아주겠지"
이제야 왜 내가 이 문장을 적었는지 알 것 같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은 완벽한 표현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어른거림'일지도 모른다. 상대의 마음이 어른거리며 스며드는 느낌.
할아버지의 돈 봉투처럼, 누군가 투박하게 건네는 사랑을 알아차릴 수 있는 감각. 그리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충분히 안기는 기분. 어른들은 안아주는 것조차 서툴다. 아이처럼 단순하게 달려가 안기지 못한다. 그래서 때로는 돈 봉투로, 때로는 음식으로, 때로는 무뚝뚝한 문자 한 줄로 '안아준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어른거림 속에서 살아간다. 완벽한 표현을 하지 못하는 어른들로서, 서로의 서툰 사랑을 이해하며 살아간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서툴러도 괜찮다. 때로는 그 어설픈 표현 방식이, 그 어른거리는 사랑의 기척이 더 깊은 사랑의 증거가 될 수 있으니까.
어쩌면 '어른거림으로 안아준다'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형태의 사랑일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은 존재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서툰 위로. 그 어설픔 속에 담긴 진심이 때로는 가장 따뜻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모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배우게 되는, 사랑의 가장 솔직한 형태가 바로 이 '어른거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