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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시를 쓰는 여자

by 내면여행자 은쇼

1. 첫 번째 발견


윤소라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3년 동안 그녀는 단 한 편의 제대로 된 시도 쓰지 못했다. 교수들은 그녀의 작품을 "기술적으로는 완벽하지만 영혼이 없다"고 평가했다.


그날도 소라는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시를 쓰려 노력했지만, 마음에 드는 구절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지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거센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걷던 소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빗물과 눈물이 뒤섞인 채 그녀의 뺨을 타고 내려왔다.


그때였다. 그녀의 머릿속에 선명한 시구가 떠올랐다.


"네가 내린 비, 내가 흘린 눈물, 경계는 어디인지..."


소라는 흠뻑 젖은 채로 급히 휴대폰을 꺼내 메모 앱에 그 구절을 적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그 한 줄에서 시작된 시를 완성했다.


다음 날, 그녀는 처음으로 창작 수업에서 칭찬을 받았다.


"이건... 네가 지금까지 쓴 것 중 가장 진실된 작품이구나," 그녀의 지도교수가 말했다.


2. 우연한 발견


그 후로도 소라는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노력했지만, 다시 막막한 벽에 부딪혔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몇 주 뒤, 그녀는 오랜 짝사랑의 대상이었던 선배가 다른 여자와 사귄다는 소식을 들었다.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녀는 밤새 슬픈 영화를 봤고, 결국 눈물을 펑펑 쏟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순간, 다시 한번 그녀의 마음속에 시의 문장들이 물밀듯 밀려왔다.


"첫사랑은 마지막 이별처럼, 영원할 것 같은 착각을 남기지..."


그녀는 깨달았다. 눈물을 흘릴 때마다 시적 영감이 찾아온다는 것을.


3. 실험과 확신


소라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시작했다. 그녀는 다양한 감정으로 눈물을 흘려보기로 했다.


슬픈 영화를 보며 흘린 눈물은 애절한 연시를 만들어냈다. 분노로 인한 눈물은 격정적인 저항시가 되었다. 기쁨의 눈물에서는 생명력 넘치는 찬가가 탄생했다.


소라는 자신의 발견을 일기장에 적었다.


"나의 눈물이 잉크가 되고, 그 물방울 하나하나가 시의 운율이 된다. 눈물이 마르는 순간, 시도 끝이 난다."


4. 딜레마


소라의 시는 학교 문예지에 실렸고, 곧 지역 문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좋은 시를 쓰려면 진짜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것.


"시를 쓰려면 계속 울어야 한다니..."


그녀는 인위적으로 울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양파를 썰거나, 슬픈 음악을 듣거나, 가슴 아픈 소설을 읽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흘린 눈물에서는 좋은 시가 나오지 않았다.


"진실된 감정에서 우러나온 눈물만이 진정한 시를 만든다."


결국 소라는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찾아 파고들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애써 외면했던 가족과의 갈등,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미처 치유하지 못한 과거의 상처들을.


5. 성공과 대가


1년 후, 소라는 첫 시집 《투명한 잉크》를 출간했다.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그녀는 '가장 촉촉한 신인 시인'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대가가 따랐다. 소라의 눈은 만성적인 결막염에 시달렸고, 심한 경우 각막에 상처가 생기기도 했다. 정신적으로도 그녀는 지쳐갔다. 시를 쓰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과정은 그녀를 감정적으로 소진시켰다.


"좋은 시인이 되려면 이런 고통이 필요한 걸까?"


어느 날, 소라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다.


"저는 눈물을 통해서만 시를 쓸 수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울 기운도 없어요. 마치 눈물이 말라버린 것 같아요."


의사는 그녀에게 말했다.


"눈물은 치유의 시작점이에요. 하지만 계속해서 같은 상처를 파헤치는 건 치유가 아니라 자학입니다."


6. 전환점


소라는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던 중 극심한 창작 슬럼프에 빠졌다.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울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첫 시집을 다시 읽어보았다. 아름다웠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록이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일까?"


절망에 빠진 소라는 한 달간의 휴식을 위해 시골 마을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녀는 매일 아침 일출을 보며 명상을 했고,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새벽, 이슬 맺힌 풀잎을 바라보던 소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번엔 슬픔이나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단순히 아름다움에 감동해서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구가 떠올랐다.


"이슬은 세상의 눈물, 나의 눈물은 이슬. 우리는 모두 같은 빛을 반사한다."


7. 새로운 발견


소라는 깨달았다. 눈물이 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눈물이 흐를 만큼 깊은 감정이 시를 만든다는 것을.


그녀는 더 이상 눈물을 짜내기 위해 자신을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대신 모든 감정을 온전히 경험하고, 그 감정이 자연스럽게 눈물로, 그리고 시로 표현되도록 했다.


두 번째 시집 《마른 눈물》은 첫 시집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더 이상 상처와 고통에만 머물지 않고, 치유와 성장, 그리고 희망을 노래했다.


평론가들은 말했다.


"윤소라의 두 번째 시집은 단순한 눈물의 기록이 아니라, 눈물 너머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녀는 이제 진정한 시인으로 성장했다."


8. 눈물의 진실


유명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소라는 수상 소감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저는 눈물로 시를 씁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저주라고 생각했어요. 시를 쓰기 위해 계속 울어야 한다니,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요?"


청중은 조용히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눈물은 단지 슬픔의 표현이 아니라, 깊은 감정의 표현이라는 것을. 기쁨, 감동, 황홀함, 경외...이 모든 감정도 눈물을 만들어내죠."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며 계속했다.


"시인의 일은 어쩌면 세상의 모든 눈물을 모으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슬픔의 눈물, 기쁨의 눈물,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의 눈물까지. 그리고 그것을 다시 세상에 돌려주는 거죠."


에필로그


소라는 이제 대학에서 창작을 가르치는 시인이 되었다. 그녀의 수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감정의 정직함'을 강조한다는 점이었다.


"여러분의 글이 진실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자신의 감정에 정직해야 합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때로는 그것이 눈물을 의미할 수도 있고, 웃음을 의미할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그 감정이 진실되냐는 거죠."


간혹 소라는 여전히 시를 쓰기 위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눈물이 아니라 그 눈물을 만든 감정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은 여전히 아름다운 시가 되어 세상에 퍼져나갔다.


"모든 눈물은 바다로 흐르고, 모든 시는 마음으로 돌아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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