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오늘은 '햇살의 언덕 수업'이 있는 날. 이름부터 모호한 이 수업에 대해 들은 소문만으로도 불안했다. 뭘 배우는지, 어떻게 평가받는지도 모른다는데, 그런 수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성적표에 어떻게 반영될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언덕을 향해 걸었다. 아니, 사실은 뛰었다. 항상 그랬듯이. 뭐든 늦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언덕 정상에 도착했을 때, 이미 다른 학생들은 자유롭게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어떤 아이는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어떤 아이는 눈을 감고 있었다. 모두가 편안해 보였다. 나만 빼고.
"어서 오세요, 윤하." 선생님이 미소 지었다. "원하는 자리 어디든 앉으세요.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요."
마음이 이끄는 곳? 그런 건 생각해본 적 없다. 나는 항상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했다. 최적의 자리, 최고의 결과를 위한 위치.
하지만 여기엔 '최적의 자리'라는 개념이 없어 보였다. 나는 어색하게 언덕 가장자리, 햇살이 가장 적게 드는 작은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선생님이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책 한 권을 펼쳐 한 문장만 읽었다.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불안하게 주변을 살폈다. 지금 뭘 해야 하는 거지? 메모해야 할까? 명상을 하라는 건가? 이게 수업이라고?
노트와 펜을 꺼내 무언가 적으려 했지만, 적을 내용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게 무슨 말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시간만 낭비하는 건데.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상한 불안감이 내 가슴을 조여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내가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에 반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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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제 오늘의 첫 활동으로 넘어가볼게요. '내면의 소리 듣기'입니다."
활동. 그 말에 안도감이 들었다. 드디어 뭔가 하는구나.
"눈을 감고 질문에 귀 기울여보세요. '오늘 아침, 내 마음이 가장 크게 말한 건 무엇이었나요?'"
나는 눈을 감았다.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오늘 할 일 목록부터 확인했지. 그리고 숙제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게 다야. 별다른 생각은 없었어.
그런데 갑자기, 희미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알람이 울리기 전, 꿈과 현실 사이에서 조금 더 자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 그리고 그 순간의 따스함과 편안함.
그런 생각을 했었나? 그걸 무의식적으로 지워버렸던 걸까? 아침마다 나는 '해야 할 일'로 머릿속을 채우는데 익숙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하고 싶은 일'도 있었던 거야?
"누구든 자신의 내면에서 들은 소리를 나눠볼까요?"
다른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더 쉬고 싶었어요", "날씨가 좋아서 기뻤어요", "불안했어요"...
그들의 솔직함에 놀랐다. 그런 감정을 그렇게 쉽게 말해도 되는 건가?
"윤하 학생은 어떤 소리를 들었나요?"
선생님의 질문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리는 것 같았다.
"저는... 할 일 목록을 확인했어요. 그게 제 마음의 소리였을까요?"
내 대답이 초라하게 들렸다. 다른 아이들은 감정을 말했는데, 나는 할 일밖에 떠오르지 않다니.
"그건 당신의 '해야 할 일'의 소리였을 거예요. 그 아래, 더 깊은 곳에 있는 목소리는 없었나요?"
선생님의 질문이 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내가 억누르고 있던 그 소리를 끄집어냈다.
"...더 자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내 입에서 나온 말에 나 자신도 놀랐다. "하지만 그건 게으른 생각이잖아요."
"게으름이 아니라, 당신의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내면의 소리를 판단하지 말고, 그저 듣는 연습을 해보세요."
선생님의 말에 뭔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 안의 소리를 듣는다... 그건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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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바람의 목소리'와 '햇살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연습을 해볼게요."
짧은 휴식 후 선생님이 다시 활동을 안내했다. 또 이상한 비유다.
"바람은 우리를 끊임없이 어딘가로 밀어붙이죠. 하지만 햇살은 그저 비추기만 합니다."
선생님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여러분의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 중에, 여러분을 채찍질하는 목소리가 있나요? '더 잘해야 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어',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지고 있어'... 이런 말들은 바람의 목소리예요."
내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건...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소리였다. 내가 만들어낸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바람의 목소리'라고?
"반면, '지금 그대로도 충분해', '네 속도대로 가도 돼', '실패해도 괜찮아'... 이런 말들은 햇살의 목소리죠. 여러분, 각자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두 가지 목소리를 종이에 적어보세요."
나는 종이를 꺼내 '바람의 목소리' 칸부터 채우기 시작했다. 그건 너무 쉬웠다.
*더 빨리 해야 해.*
*네 성적으론 부족해.*
*다른 친구들은 벌써 끝냈을 거야.*
*완벽하지 않으면 의미 없어.*
그런데 '햇살의 목소리' 칸을 채우려고 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그런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스스로에게 다정하게 말해준 적이 있었나? 그런 기억이 없었다.
그때, 어렴풋이 들렸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어릴 적, 할머니는 내게 자주 말했었지.
*윤하야, 넌 그냥 있어도 예쁘구나.*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
*넌 정말 특별한 아이야.*
그 말들을 마지막으로 들은 게 언제였을까. 너무 오래되어 거의 잊고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바람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였던 거야?
햇살의 목소리 칸은 여전히 비어있었다. 뭘 써야 할지 몰라 손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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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햇살의 언덕으로 모였다. 이번엔 나도 용기를 내어 햇빛이 조금 더 비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왜인지 이전보다 조금 덜 불안했다.
"오후에는 자기 자신에게 '괜찮아'라고 말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선생님이 말했다. "여러분이 실수했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거나, 그저 지쳤을 때...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하나요?"
선생님의 질문에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내 마음의 말들.
*넌 항상 이래.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노력이 부족해. 다시 해봐. 더 빨리.*
그 말들이 얼마나 나를 지치게 했는지를 처음으로 느꼈다.
"이제 그 말을 '괜찮아'로 바꿔보세요. '실수해도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 네가 느끼는 감정도 괜찮아'."
내 손은 천천히 일기장을 펼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적었다.
*늦어도 괜찮아.*
단순한 세 글자가 내게는 엄청난 혁명처럼 느껴졌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으니까. 그 말을 스스로에게 해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 세 글자를 쓰자, 갑자기 더 많은 문장이 떠올랐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때로는 쉬어도 괜찮아.*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처음으로 내 안에서 햇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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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활동은 '지난 과거의 자신에게 편지 쓰기'였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의 자신에게, 지금의 여러분이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나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하루 중 가장 무서운 과제였다. 과거의 나를 마주한다는 건, 내 모든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손은 망설이지 않았다. 글자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사랑하는 어린 윤하에게,
> 넌 항상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려고 노력했지. 가장 뛰어난 학생이 되기 위해, 누구에게도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밤에 몰래 책상에서 졸다가도, 아직 더 공부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다그치던 너의 모습이 보여. 실수할까봐 늘 긴장하고, 친구들과 웃고 싶을 때도 그것이 시간 낭비처럼 느껴져 참아내던 너.
하지만 이제 알게 됐어. 그 모든 노력 속에서도, 넌 한 번도 네 자신에게 "잘했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는 걸. 항상 다음 목표만 생각했지, 지금 이룬 것에 기뻐할 줄 몰랐던 거야.
이제는 말해줄게. 윤하야, 넌 정말 잘하고 있어. 실수해도 괜찮고, 때로는 쉬어도 괜찮아. 네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다 소중해.
햇살처럼 너 자신을 비춰봐. 판단하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너를 사랑해, 오늘의 윤하가.
편지를 다 쓰고 나서야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편지 위에 떨어져 잉크가 번졌다.
무엇 때문에 우는 걸까? 이렇게 울어본 적이 있었던가? 가슴이 아프면서도 동시에 무언가가 풀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단단히 묶여있던 실타래가 서서히 풀리는 느낌.
"무슨 감정이 느껴지나요?"
선생님이 조용히 내 옆에 앉았다. 그 눈빛은 판단이 아닌, 순수한 관심이었다.
"슬픔과... 안도감이요." 내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제가 저에게 이렇게 말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항상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만 생각했어요."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과,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충돌하지 않아요. 오히려 자신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짜 성장이 시작되죠."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이 수업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한 것 같았다.
햇살의 언덕은 '성취'의 장소가 아니라 '회복'의 장소였던 거야. 그리고 그 회복이 있어야만 진정한 성장도 가능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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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어갈 무렵, 선생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오늘 하루, 햇살의 언덕에서 무엇을 발견했나요?"
다른 친구들이 돌아가며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법을, 누군가는 스스로를 용서하는 법을, 또 누군가는 기다림의 가치를 배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왔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지만, 이제 그것이 불편하지 않았다.
"처음엔 이 수업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어요." 솔직하게 말했다. "뭘 배우는지, 어떻게 평가받는지도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알았어요. 이곳은 배움의 장소가 아니라, '되찾음'의 장소였던 거예요."
잠시 말을 멈추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언덕의 공기는 이제 내 폐 속까지 익숙했다.
"제가 되찾은 건, 어쩌면 제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 모습도 충분히 사랑스럽다는 걸 인정하는 용기."
내 말에 선생님이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내 마음 깊은 곳까지 따뜻하게 비추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일기장을 펼쳐 오늘 쓴 마지막 문장을 보여주었다.
오늘, 나는 햇살의 언덕에 서 있다.
더 이상 달릴 필요도, 숨을 필요도 없이.
바람에 지친 나에게 햇살이 말을 걸었다.
"괜찮아. 넌 이미 잘하고 있어."
그리고 처음으로, 나는 그 말을 믿었다.
햇살의 언덕을 떠나는 길, 저녁 노을이 내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그 그림자는 더 이상 숨고 싶은 어둠이 아니라, 내가 이 땅 위에 단단히 서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하루 동안의 수업이었지만, 내 안에서는 무언가가 영원히 바뀐 것 같았다. 마치 오랫동안 닫혀있던 창문이 열리고, 따스한 햇살이 들어온 것처럼.
바람과 햇살 사이에서, 나는 마침내 자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