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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하는 날

by 은수달

"이번엔 쇠고기 말고 돼지고기 어때요?"

일 년에 한 번뿐인 회식을 앞두고 메뉴를 고민하는데, 부장님이 먼저 제안했다. 신호동 쪽에 맛있는 고깃집이 있다며 직접 추천한 것이다. 재작년엔 곱창, 작년엔 쇠고기를 먹었으니 돼지고기를 먹을 차례가 된 걸까.

10년 넘게 근무한 외국인 직원이 본국으로 돌아간다며 퇴사한단다. 일이 꼬여서 애먹었지만 무사히 잘 처리했고, 다들 정이 들었는지 아쉬워했다.


"6개월 뒤에 온다고 했으니까 안 오면 매일 톡 할 겁니다."
"가서 푹 쉬고 또 봅시다."

현장을 묵묵히 지켜온 그는 중간에 크게 다치긴 했지만, 누구보다 든든한 일꾼이었다.

"고기는 왜 꼭 막내가 구워야 하나요?"
이제 갓 입사한 누군가가 불만을 제기했단다. 하지만 이번에도 고기를 굽는 건 팀장급인 나의 몫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고기를 잘 굽고, 다른 직원들이 마음 편하게 고기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러브샷만 하고 러브는 하지 맙시다."
평소에는 적당히 거리 두며 지내지만, 오래 일한 직원들이 많아서 그런지 회식 자리에선 편하게 농담을 주고받는다. 운이 좋아서 그동안 다닌 직장에선 회식을 일 년에 한두 번 했었고, 업무의 연장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계산을 하려는데, 직원이 날 본 적 있다며 아는 척을 했다. 알고 보니 회사 근처 카페에서 근무했단다. 세상은 역시 좁다는 걸 실감하며 회식을 무사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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