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도민 제주 조카

by 은수달


"할아버지, 핸들은 두 손으로 잡아야죠."

뒷좌석에 타자마자 안전벨트를 맨, 나의 막내 조카는 여섯 살. 자기주장이 강한 데다 원칙주의자라 가끔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모는 돈이 없으니까 장난감 작은 걸로 사줄게."

"돈이 없으면 장난감 못 사잖아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유치원 합격하면 장난감 사주기로 약속한 어머니는 조카 손에 붙들려 장난감 코너로 향했다.

"여기 히어로들 다 모였어!"

흥분해서 외치기에 갖고 싶으냐고 묻자, 다른 칸을 둘러보며 신중하게 고르기 시작한다. 혹시라도 비싼 걸 사달라고 할까 봐 잽싸게 선택을 반강요한다.




"이모, 브로콜리 먹고 싶어요."

조카가 뜬금없이 브로콜리를 찾은 시각은 밤 10시경. 그때만 해도 마트가 9시까지 영업하던 시절이었다. 이유를 설명한 뒤 다음 날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어머니를 따라 모임에 다녀온 조카의 손에 10만 원 넘는 지폐가 들어왔다. 잃어버릴 수 있으니 여동생한테 맡기라고 하자 싫단다.

"그럼 어디 둘 건데?"

"베개 밑에요."

"자는 사이에 누가 가져가면 어쩌지?"

"안 가져가요."

"도둑이 훔쳐갈 수도 있잖아. 그래서 돈은 통장이나 금고에 보관하는 거야."

차분하게 설명해주자 녀석은 알아들었는지 지폐를 들고 여동생한테 달려간다.

"이거 엄마가 통장에 넣어줄게."


내일은 여동생 생일이라 다 같이 외식하고 케이크를 사 왔다. 샴페인을 잔에 따르자 자기도 잔을 달라고 조르는 조카님. 작은 잔에 키즈 음료를 채워주자 건배를 외치며 술처럼 원샷한다.

"취하니까 많이 마시면 안 돼."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제주 토박이. 동네에서 말 등의 동물을 자주 보고, 노는 것이 주요 일과라 그런지 또래에 비해 해맑은 편이다. 때론 고집을 부리거나 잠투정을 해서 가족들을 힘들게 하지만, 고향에선 이모부터 찾는 이모쟁이지만,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이 한편으론 대견하다.


'네가 성인이 될 무렵이면 나도 나이가 제법 들겠지. 그래도 가끔 이모랑 보낸 시간들 떠올리며 힘든 시기도 잘 견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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