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황홀하지만 고통스럽고
아름답지만 갈등과 상처를 남긴다.
사랑의 과정은 모호하며 예측 불가하다.
임지연, <사랑> 중
사랑은 아무나 하나
한 때 위의 노래가 거리에 울려 퍼지던 적이 있다. 그 당시만 해도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맞는 얘기 같다.
사랑 따윈 필요 없어. 개나 주라고 그래!!
그렇게 외치던 한 여자는 또 다른 남자의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실연의 아픔을 노래하며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왜 어느 노래에서는 사랑을 '아무나 하지 못하는 것' 다시 말해 특정한 누군가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 내렸을까.
물론 타인을 사랑하는 데 자격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부모가 되는 데 최소한의 자격이 필요할 진 몰라도.
사랑의 신화를 코웃음 치던
한 여자는 운명적인 끌림 앞에
무릎 꿇고 말았다.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알고
분신이나 다름없는 상대한테
정신없이 빠져들었고,
진정한 사랑이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또 다른 운명 혹은 양가 부모의
이기적인 마음이
그들을 갈라놓았으며
이조차 두 사람의 사랑을
완성시키려는 신의 의도라 여겼다.
연인들은 불안정한 감정 상태를 벗어나
안정감을 찾길 원하면서도
안정적 관계가 되면 권태감을 느낀다.
때론 감옥 바깥의 자유를 원하면서도
상대방이 자신을 강력하게 묶어주기를 원한다.
임지연, <사랑> 중
사랑은 이처럼
모순 덩어리 그 자체이다.
누군가를 향한 열정이나
희생의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환영의 실체는 무엇일까.
오직 사랑만이 답이라고,
인생의 전부라고 믿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사랑이 밥 먹여 주나요?
상대를 자신의 소유물이나
과시 대상으로만 여기고
본인의 욕구나 이기심을 채우면서도
그것이 상대를 위한 것이라
포장하는 행위를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감히 사랑이라고 주장해도 되는 걸까.
사랑은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신을 향한 사랑이든,
가족이나 연인과의 사랑이든
아니면 인류를 위한 사랑이든.
적어도
사랑이라고 명명되려면
사랑 안에 뒤섞인 쾌락과 욕정을
책임과 배려, 헌신으로부터
가려낼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