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때 남해에 있는 큰댁을 가족들과 방문했는데, 차가 막혀서 왕복 10시간 가까이 걸렸다. 안 그래도 멀미가 심한 편이라 그 시간은 내게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해마다 명절이 다가오면 급한 일들 처리하느라, 일정 조율하느라 바빠진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휴 첫날엔 부모님과 함께 조부모님 산소를 방문했는데, 공원 전체가 교통체증 때문에 한바탕 난리를 겪었다. 근처에서 점심 먹고 난 후 부모님은 남동생 네와 남해로 떠났고 난 귀가했다.
'내일까진 마음 편하게 쉬겠네.'
원래 제주도에 사는 여동생 네가 방문하는데, 이번엔 일요일에 온단다.
'휴, 다행이다. 안 그럼 연휴 내내 조카들한테 시달릴 뻔했네.'
결혼한 친구들은 혼자 자유롭게 지내는 날 종종 부러워한다. 하지만 나도 마냥 자유롭고 편한 건 아니다.
그래도 명절 증후군을 상대적으로 덜 겪을 수 있는 건, 양가 눈치를 살피느라 쓸데없이 에너지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가족, 친척들이 모여서 안부도 주고받고 차례를 지내는 것까진 좋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부터다. 토씨 하나 바뀌지 않는 잔소리에서 시작해 해묵은 감정을 끄집어 내 다툼을 유발하고,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야근보다 못한 집안일을 떠넘긴다.
"명절 때 출근하면 돈이라도 버는데, 무보수 노동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지?"
"시댁에서 자고 올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스트레스받아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불평을 듣다 보면 비혼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엄마는 맏며느리가 아닌데도 온갖 집안 행사를 도맡아 하고, 나중에 제사 문제로 갈등이 생겼을 땐 제사 파업(?)을 선언했다. 남동생이 장손이라는 이유로, 비교적 형편이 넉넉하다는 이유로 제사를 떠넘기려는 친척들. 하지만 엄마는 고생을 남동생이나 올케한테까지 물려주는 건 원치 않는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너도 저만한 애 있으면 좋았을 텐데..."
조카들과 열심히 놀아주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는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엄마가 생각하는 행복과 내가 원하는 행복의 정의가 너무 달라서 그 차이를 좁히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랬다면 지금의 자유는 없었겠죠."
어느 철학자가 그랬다. 혼인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혼을 선택했다면 결혼 생활에 충실하면서 행복을 찾고, 비혼을 택했다면 혼자서도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적극적으로 찾으면 된다고.
시대에 따라 개인의 가치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그게 관습이니까...라는 명분을 들이대며 개인에게 동일한 가치나 삶을 강요하기 전에, '네 생각은 어때?'라고 한 번쯤 물어봐주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