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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가 뭐길래

by 은수달


"어젯밤에 보일러 틀었는데 온도가 거의 안 올라가서 떨면서 잤다."


곧 입주예정인 집에 어머니가 친구분들과 놀다가 자려고 보일러를 틀었는데 제대로 작동이 안 된다며 하소연했다.


"아무래도 보일러 용량이 적어서 그런 것 같다던데?"

또 시작되었다. 주위에 물어보고 '카더라'를 진리로 믿는 병이.

"일단 AS 접수부터 하는 게 낫지 않아요?"

"소장님한테 물어보니까 대신해준다더라."

하지만 겨울철이라 그런지 전화 연결이 안 되어 카톡으로 접수했고, 방문 기사의 연락을 기다렸다.

"지금 가려고 하는데 계시나요?"

"밖에서 점심 먹고 있어서 지금은 좀 힘든데요. 몇 시쯤 오실 수 있나요?"

"접수가 밀려서 정확한 시간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도 대강이라도 알아야 저희가 기다리죠."

"갈 수 있을 때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전화가 뚝 끊어졌다.


다음 날, 오후 3시 30분경에 방문한다는 얘길 듣고 시간 맞춰 기다렸다. 그런데 4시가 다 되도록 기사로부터 연락이 없었다. 전화를 거니 지금 가고 있다는 말만 남기고 뚝.


'도대체 누가 고객이고 갑인지 모르겠네.'


"지금 보일러는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는데요?"

"그럼 뭐가 문제인가요?"

"바닥 재질이나 두껍에 따라 온도 올라가는 시간이 차이 날 수 있어요. 며칠 비워뒀다 가동하면 예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요."

"며칠 전엔 종일 틀었는데도 온도가 거의 안 올라갔대요."

"요즘 같은 날씨엔 창문만 자주 여닫아도 열을 많이 뺏겨요. 바닥에 손 대보세요. 따뜻하죠?"


기사가 시키는 대로 손을 가져가자 미지근한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어머니한테 이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었다.

'분명히 설명해도 납득 못할 텐데...'


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걸어 좌초지종을 설명하니 그럼 왜 온도가 계속 그대로 있느냐며 내게 따졌다.

"그거야 저도 모르죠. 아무튼 이상 없다고 해서 보냈어요. 일단 집을 비우더라도 보일러는 당분간 가동해 주래요."


아파트에서 반평생 넘게 살다 보니 주택과는 보일러도 에어컨도 효율이 다르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앞으로 난방비가 많이 들 걸 생각하니 머리가 살짝 아팠지만... 그래도 고장이 아니라니 그나마 다행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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