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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사 줘도 도망 안 갈게요

by 은수달


"그럼 내가 사줄게요."


흔히 신발 사주면 도망간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내게 신발 선물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발이 유난히 작아서 아동화와 성인화의 중간쯤에 속하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어느 신발 매장을 둘러보다가 마음에 쏙 드는 스니커즈를 발견하고 사이즈를 찾아 헤맸다. 그런데... 원하는 색상만 맞는 치수가 없었다.

"인터넷에 알아보면 있을 거예요."

애삼이는 웹 사이트를 검색한 뒤 매장에서 본 것과 동일한 제품을 대신 주문해 주었다.


그동안 발에 맞는 신발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헤맨 결과 치수가 잘 맞는 브랜드를 몇 개 발견했다. 운 좋게 매장에서 바로 구입하는 경우는 손가락 안에 꼽혔고, 대부분 주문한 뒤 기다려야만 했다.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안 보이네?'

몇 달 후, 기계로 치수를 측정해 단화를 구입한 매장을 방문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매장이 사라졌단다. 아쉬운 마음에 반쯤 포기하고 지내다 겨우 맘에 드는 신발을 골랐고, 다른 색상을 하나 더 사고 싶어졌다.


이번엔 어떤 옷이랑도 무난하게 어울리는 카키 220mm. 원래 성탄절 선물로 바디로션을 받기로 했는데, 마침 백화점 상품권이 생겨서 그걸로 장만했다. 그래서 대신 신발을 받게 된 것이다.


대다수가 선호하는 명품 가방이나 옷이 내게도 몇 개 있다. 그러나 내 월급을 훌쩍 뛰어넘는 물건을 갖고 싶다는 이유로 지르는, 대범함을 가지진 못했다. 대신 여동생이나 엄마 혹은 지인이 쓰다가 싫증 나거나 사이즈가 작아지면 내게 자연스레 넘어왔다.


"혹시나 사이즈 작아서 못 입는 옷이나 구두 있으면 언제든 환영해요."


예전에 아는 동생이 인터넷으로 구두를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사이즈가 작아서 교환하는 대신 내게 주었다. 그 구두를 특별한 날에 신었고 그때마다 그 동생이 떠올랐다.


선물은 그런 것이다. 주는 사람의 따뜻함과 배려가 느껴지면 아무리 저렴해도 가치가 빛나고, 받는 사람이 만족하지 못하면 아무리 화려하고 비싸도 가치를 잃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애삼이가 준 선물에는 '이 신발처럼 내 마음도 늘 따라다닐 거예요.'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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