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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달 Sep 24. 2024

실존에 대하여


우리가 이 강연에서 휴머니즘에 대하여 말한다는 사실을 놓고서 어쩌면 많은 사람이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실존주의라는 말은 인간의 삶을 가능케 하는 독트린을 의미합니다.


주체성이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먼저 실존한다는 사실을, 즉 인간은 우선적으로 미래를 향해서 스스로를 던지는 존재요, 미래 속에 스스로를 기투하는 일을 의식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우선 주체적으로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기투(project)인 것입니다.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실존주의 개념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문학 작품으로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과 <페스트>를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페스트>는 시대를 초월해 얘기 나눌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재앙은 인간의 척도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들은 재앙을 비현실적인 것, 곧 지나가 버릴 악몽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 그들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자기들에게는 여전히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유롭다고 믿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카뮈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삶의 부조리와 딜레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재앙은 죽음처럼 언제든 찾아올 있지만, 우리는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페스트도 코로나 바이러스도 인간의 무기력함을 일깨워줬지만, 작품 인물들처럼 언젠가는 피해 갈 있을 거란 오만함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아닐까.


반면, 니체는 사르트르나 카뮈와는 다른 방식으로 실존에 대해 얘기한다.


모든 생명체는 힘을 원하는 욕망 그 자체이며, '무를 향한 의지'는 살려고 하는 충동 자체이자 자연계 전체의 핵심인 '힘을 향한 의지'를 부정한다. 고귀함과 힘을 회복하고, 대담하고 뻔뻔스럽게 다시 살아야 한다.


-조니 톰슨, <필로소피 랩>


인간은 힘에 대한 의지를 지닌 욕망 그 자체이지만, 주체성을 포기하고 타자에게 욕망을 내맡긴 채 살아간다. 그러나 니체는 잃어버린 고귀함과 힘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화 <다음, 소희>에서는 콜센터에 근무하는 소희가 등장한다. 학교에서 '애완동물 관리과'를 전공한 그녀는 담임의 권유로 대기업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가게 된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던 소희는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일한 대가를 정당하게 받지 못한다. 그 와중에 자신의 팀장이 목숨을 끊은 사실을 알고 충격받지만, 회사는 업무에 복귀할 것을 강요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가 직접 대면하진 않지만, 우리의 가족이나 이웃이다. 또한 장소나 형태만 달라졌을 뿐, 치사하고 억울해도 견뎌야 하는 우리의 노동 현장이기도 하다.


돈이라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 때론 숨 죽인 채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우린 주체성을 쉽게 포기하거나 누군가에게 넘겨줘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실존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기투는 다른 한편으로는 피투성(Geworfenheit)을 동반한다. 실존은 현실세계 속에서 항상 자기 자신을 창조하면서, 그 가능성을 전개해 간다. 이것은 실존이 '기도한' 것이고, '앞에 던져진' 것으로, 이러한 실존의 존재 방식을 기투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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